3.1절을 맞아 찾아본 리들리의 이민 역사 기념각
하와이에서 이주한
한인 이민 선조들의 이민 역사 기념각이
캘리포니아 작은 도시인
리들리에 조성되어 있다,
이곳 리들리( Reedley)는
독립자금 조성지이기도 했지만
당시 한인 유학생들의
일자리도 만들어 주었던 고마운 도시였다
당시에
엄청난 거금이었던 20만불의 거금을
독립자금으로 상하이 임시정부로 보냈다
지금 현재의 가치로는
약 천 오백만 불에 해당하는 거금이다,
이민 역사 기념각이 있는 곳을
위치상으로 보면...
캘리포니아의 곡창지대인 프레즈노 카운티의 작은 도시 리들리에 있다
엘에이와 샌프란시스코의
중간지점이다,
이민 역사 기념각의 건립비용은
총 25만불 들었는데
리들리시가 땅과 약간의 자금을 합해 12만 불을
제공했다
'한인 이민역사 기념각'은
서울에 있는 독립문의 축소된 모형과
미국 애국지사 10명의 기념비와
같이 2010년 11월 13일에 건립되었다
미주 한인 최초 백만장자이며
애국지사였던 김형순 씨 자택 및
김형제 상회가(Kim Brothers) 위치했던
리들리 시,, 인근 부지에 건립되었다
기념비 아래쪽에 통영시가
협찬을 했다는 기록이 있어 찾아보니
김형순의 고향이 통영이었다,
안창호, 이승만, 윤병구, 이재수, 김종림,
김호, 한시대, 김형순, 송철, 김용중 등
애국지사 10인의 기념비가 2줄로 서 있다,
4일간을 매일 내리는 빗줄기가
약간 수글어 들고 하늘이 맑아 왔다,
아침에 전화 한 통화가 왔는데
골프를 치러 리들리 쪽으로 가자고 한다
모처럼 맑은 하늘과
높은 하늘의 골프장은 멋지고 좋았다,
골프를 치고 집으로 돌아오기 바로 전,
이곳 중가주 한인들의 힘으로 건축한
이민 역사 기념각을 찾아 가보지 않겠냐는 제의가 왔다,
그리고 마침 내일이 3.1절이었다,
모두 그 제의를 받아들이고 이곳을 찾았다,
가까이 프레즈노에 살고 있지만,
이곳을 찾아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자그마했지만 말끔히 정리되어 있었다,
이쁘게 생겼다는 느낌도 들었던 이곳,,
봄바람이 산들거리며 불고 있었다,
이민 역사 기념각 주소는 196N Reed Ave. Reedley며
3월 중순까지 펼쳐지는
블러섬 트레일 (Blossom Trail) 코스 중간에 위치한다,
봄의 햇살이 비추었다, 따듯했다,
원래 리들리가 이리 따스했던가
아니면 골프를 치고 잠시 머무른
그 시각에 땀이 나서 더위를 느겼는가,,,
아무튼 이곳은 작은 시골 마을이다,
프레즈노는 이곳에 비하면 대도시 같은
느낌이 들어오는 곳이다,
이곳엔 모처럼 맑은 햇살이 내려오면서
그동안 움츠렸던
주변의 꽃들이 활짝 피고들 있었다,
늘 그랬듯이 이곳에서의 자랑은 역시
블러섬 트레일 (Blossom Trail) 코스라고 새삼 느끼는 시간이었다,
리들리라는 작은 시골에
이민 역사 기념각이 새워졌다, 하필 리들리에,,,
미국 캘리포니아엔
크고 유명한 도시들이 여러 개가 있는데
그중 작은 도시 프레즈노도 아닌 더 작은도시
리들리에 세워진 기념각 이라니….
사진을 찍고 블로그를 위해 자료를 보다 보니,,,
이곳에 기념각을
세울 필요가 있음을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김 형순님이 이곳에서 돈을 벌고 모아
독립자금으로 보탠 바로 그 장소였다는 것에
많은 의미를 둔 것 같았다,
나머지 기념비에 적혀 있는 몇 사람도 이곳에 정착하여 살았던 사람이다,
특히 그 이름이 잘 알려진
도산 안창호 선생과 이승만 박사도
이곳에 들려 독립운동에 관한 도움을 받았다는 것은
이곳에 기념각이 세워질만 했다,
한국을 떠나 살아가는 이민 생활의 아픔과 조국에 대한 그리움은
1900년 초에는
지금과 많이 다를 수 있다,
앞서 살아간 선배님들이
조국을 생각하고 조국의 독립운동에 참여한 것에
고개를 숙여 존경과 감사를 전하고 싶다 ..
이곳을 찾아올 때도 그리 어렵게 찾지 않았다,
구글에 대고 리들리 한인 역사,,, 등등 3번 정도만 치면
이곳에 대한 설명과 함께
주소까지 쉽게 찾을 수 있다,
그리고 찾아간 이곳의 기념각은
왠지 작아 보였다,,,,
아담했다는 표현도 적당할 수 있겠으나
좀 왜소했고 약해 보였다,,
아직도 독립을 원하는... 애처로운 느낌도 들었다,,,,
리들리는 작고 아름다운 꽃들이 만발하는 블러섬 트레일의
도시를 지나가는 유일한 곳이다,
그리 유명한 도시도 아니고
유명할 수도 없는 시골이며
농부들이 사는 작은 도시다,
그런 곳에 약 1.000 스케어피트 정도
차지하고 있는 이곳의 기념각은 너무나 고요했다,
좀 더 많은 한인이 찾아와 주었으면
하는 심정도 생겼다
왠지 이젠 독립을 하고
세계에서 몇 번째로 잘살고 있는 나라의 이민 역사 기념각 치고는
왠지 모르게 작고 나약하게 보였다,
중가주의 리들리는 작은 농부들의 도시다
이곳에 한국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지는 않다,
한국 글씨로 독립문이란 글씨를 보는 것만으로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겐
역사의식과 애국심도 느낄 수 있는 분위기란 것엔
토를 달고 싶지는 않다,
정말 훌륭한 생각을 하고
이민 역사 기념각을 새운 것은
참 잘한 일이라 본다,
이곳을 떠날 때 다시 한번 뒤를 돌아봤다,,,,
왠지 우리가 떠나면 앞으로 이곳을 찾아오는 사람들이
별로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가까운 곳에 살면서도
이곳을 찾아온 것이 처음인데
또 누가 이곳을 찾아올까 하는 생각이 들어왔다,
그러면서 이 이민 역사 기념각을
좀 더 큰 도시에 옮겨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 크지 않은 싸이즈의 이 기념각을
그대로 들어다
한인 타운 한복판에 옮겨보면,
좀 덜 외롭게 서 있을 것 같아 보였다,,,
힐금 올려다본 태극기가
힘없이 늘어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