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민 이야기

pablo라는 이름과 새로운 싸인이 생겼다

김 항덕 2020. 7. 31. 04:51

파라과이에서 생활은 적응할 수가 없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울음이 나오고 몇 번이나 화장실 벽을 치고받고 ,

그러나 이제 이곳에서의 생활은 현실이었고 비실거리면서도 살고는 싶었다,

이민 생활의 불편함은 조금씩 적응해 나가고 있었던 거였다,

본격적으로 이민 생활에 대한 적응을 해 보기로 했다,

먼저 이민 생활을 해야 할 때 먼저 고민해야 할 것이 두 개가 있다,

파라과이 사람들에게서 내 이름이 뭐냐고 여러 번 질문이 들어왔는데

그때마다 내 한국 이름을 불러주다 보니 그들은 당연히 내 이름을 기억하거나 불러보기에 어려움이 있었다,

 이곳에 맞게 이름을 정해야 했다

이곳 사람들에게 스페인어로 생활하는 파라과이의 이름, 당연히 스페인어식으로 만들어지고

 이곳 사람들이 나를 쉽게 불러볼 수 있는 이곳 이름이 필요했다

나는 한국에서부터 성당을 다녔으며 본명이 있었는데 

바오로였다. 바오로는 이곳 스페인어, 라틴어로는 Pablo 가 된다

고민은 해결되고 그때부터 30년의 이민 생활 속에 지금까지 난 Pablo로 이름이 불리고 있다

내가 한국에서 쓰던 이름,, 그 이름은 시간이 흘러갈수록 사라져 버리고 

더욱더 많은 사람들이 나를 파블로로 불러주고 있고

이곳에 사는 한국 교민들 사이에도 내 이름은 파불로로 이름이 익숙해지고 있다,,

당시의 많은 교민 역시 이민 생활 3달 정도면 이 나라 식으로 편한 이름들을 지어서 생활했고

 그것은 당연히 필수적인거 같았다,,,

 

또 다른 고민은 당시 1983년도 한국에 있을 때까지만 해도 너무나 생소했던

 바로 싸인을 만들어야 했던 것이다,

당시 여권을 보면 길고 두툼했는데 맨 앞쪽에 서명란이 있었다,

난 이상한 케이스 때문에 아버지에 의해 거의 강제로 이곳 파라과이에 오게 된 상태였기에

 여권도 김포공항에서 받을 수 있었고 내가 떠나야 한다는 나라가 파라과이라는것을

  그곳에서 알게 되었기에 여권을 살펴볼 겨를이 없이 비행기에 올랐었다,

파라과이 아순시온 루께시에 위치한 단 하나밖에 없었던 그 공항의 입국 관리인이

 내 여권을 살펴보면서 나에게 왜 여권에 싸인이 없냐고 했는데 

난 싸인을 하라는 그의 말에 너무나 어리버리한 상태로 굳어버렸던 적이 있었다,

누구의 도움으로 여권에 싸인을 한답시고 했는데 바로 한글로 그냥 내 이름을 적었던 것이었다,

 

이후,,

파라과이에서 면허증이나, 은행 계좌를 열어야 할 경우도

 외국인은 꼭 여권과 같은 사인을 해야 했는데

그때마다 난 유치한 한국 이름을 사용해야 했다,

 당시 부득이하게 싸인이 필요했던 여러 군데의 서류엔 그렇게 내 한글 사인이 적히기 시작했는데

그런 보기싫은  내 사인이 너무나 싫어서

정식으로 면허증부터 새로운 싸인으로 바꾸기 시작했다,,

여러 경로를 통해 은행에서 사용하는 모든 수표의 싸인과 그 나라에서 발급한 면허증의 싸인을

 결국 모두 바꾸는데 성공했지만

아마도 그때부터 나의 본격적인 남미 이민 생활이 시작되기 시작했던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