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유럽 이야기/덴마크

덴마크 코펜하겐

김 항덕 2020. 7. 2. 04:01

엘에이서 뉴욕을 거쳐 크루즈 배를 타기 위해 덴마크를 가야 했다


덴마크 코펜하겐에 도착한 우리는 

그곳의 가이드와 만나 코펜하겐을 관광했다,


가이드의 설명을 간단히 노트에 적어 기록 해놨던 것을

 이곳에 펼쳐 보기로 한다

하늘에서 본 덴마크



덴마크 도착 공항 출입국 쪽엔 일본어 중국어 영어 ,,그러나 한국어는 없었다  북유럽 덴마크에 도착해서 처음 우리를 맞이했던 가이드는 여자였다,서유럽을 여행 했을 때 만났던 가이드는 전부 남자였는데,
이곳 북유럽 에서 만나 가이드들은 전부 여자였다,
 아무튼 그 가이드는
샤넬 모자를 쓰고 구찌 핸드백을 들고 나타난 덴마크에 사는 학생이라고 신분을 밝힌 한국여자 가이드였다
그곳 덴마크에도 300명 정도의 교민이 있다고 한다,주제원이나 학생이 대부분인데
한국 음식이 먹고 싶어도 한국 식당이 없어 못 먹는다는 인사를 하면서 우리를 안내 했다

덴마크의 코펜하겐 거리를 달린다,
  안데르센과 평등, 자유, 복지의 나라 덴마크는 작은 나라라고 할 수 있지만, 자연만큼은 풍요롭고 오랜 역사를 가진 나라이다. 안데르센과 낙농의 나라로 알려진 덴마크는
약 406여 개에 달하는 섬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대서양 북부에 위치한 세계 최대의 섬 그린랜드와 영국 북쪽의 파로 제도로 이루어져 있다.

덴마크 시간으로 오전 10시경


 6월의 어느날,,북유럽의 멋을 알기위해 노력중추웠다,,많은 사람들이 두꺼운 옷을 입고 있다,,  

 수도는 코펜하겐(Copenhagen, 약 137만명)이며, 인구는 약 525만명이라고 한다
면적은 자치령 그린랜드 및 페로제도를 제외하고 43,094 km2 로 경상도만 한 크기이다. 
주요민족은 북게르만계의 데인족(Danes)이고, 주요언어는 게르만계의 덴마크어(국민대다수 영어 구사 가능)이다.
종교는 루터복음교(국교, 88%), 카톨릭, 침례교, 유태교등이고, 정치형태는 입헌군주국으로 내각책임제이다.
국민 520만명 중 약 5분의 4가 도시에 집중되어 있다. 바이킹의 후예인 덴마크인들은 오늘날
낙농과 공업 디자인등으로 부를 축적하여 풍요로운 생활을 구가하고 있으며, 국민들에게
 평등의식을 심어주어 계급의 차이가 적은 평등· 자유· 복지의 사회를 이룩하게 만들었다

 코펜하겐의  구 타운 시내 중심가에 유일하게 네온싸인이 있다고 한다,그것이 바로 samsung 싸인
밤에는 유일하게 삼성 싸인이 코펜하겐 최고의 중심부에 환하게 비쳐 진다고 한다,

 덴마크는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왕국의 유물들이 산재해 있으며 바로 이런 것들이 이 나라의 역사를 말해주고 있다.
바이킹의 후예인 덴마크의 역사도 깊고 긴 불운의 역사를 가진 나라라고 한다,
원래 이웃 나라 노르웨이도 덴마크땅이였다고 한다,
나폴레옹 전쟁 동안 영국이 코펜하겐을 두 번 침공하는데, 1801년에 덴마크함대에 큰 손실을 가했고
1807년에는 코펜하겐의 많은 부분이 화염에 휩싸였다. 스웨덴인들은 덴마크가 쇠약해진 틈을 타 그들에게 노르웨이 양도를 요구한다.

 19세기는 불운과 몰락이 시작되었던 시기로 자아가 강했던, 키 작은 한 프랑스인(나폴레옹)의 지배를 받던 때였다. 
그러나 덴마크는 1849년 6월 5일 입헌군주제를 채택하기에 이른다. 덴마크는 제1차 세계대전에서
중립을 지켰고 제 2차 대전이 발발하자 중립을 재선언한다. 하지만 1940년 4월9일 독일전투기가 코펜하겐을 침공하자 덴마크는 항복하고 만다.


 코펜하겐은 1167년에 로스킬레의 주교 압살론이 셸란섬의 해안에 성을 세우고
성벽과 해자를 둘러 요새화 한데서 비롯된 곳이다. 당시는 발데마르 1세의 치세기로
슬라브인의 침입에 대비해 구축된 것이, 1445년에 덴마크의 수도이자 왕실 거주지가 되었고,
16세기 후반에 이르러 무역이 번성하면서 시의 규모도 확장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코펜하겐이 수도가 된 것은 처음에는 방어상의 이유가 가장 컸고 이후 무역의 중심지가 되면서 번성하게 된 것이라 한다. 
우리에게는 안델센의 동화와 낙농국가로 잘 알려진 덴마크의 수도 코펜하겐은 '상인의 항구(Merchant harbor)'라는 뜻이다,
상인의 항구라는 뜻을 지닌 코펜하겐은 1,360,000명의 인구를 지니고 있으며,
스칸디나비아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이자 덴마크의 수도이다.
 많은 공원과
푸르스름하게 산화된 중세의 구리 지붕으로 흔히 'green city'로 불린다
 또한 아름답고 깨끗한 거리로 유명하며
궁전을 비롯한 많은 역사적인 건물, 미술관, 박물관 등이 많다. 코펜하겐은 번화가, 식당가, 호텔가, 학생가, 서점가,
상점가, 주택가 등이 확실하게 구분되어 있으며 각 거리마다 독특한 개성을 지니고 있다. 또한 중세의 거리엔 차가
다니지 못하기 때문에 더욱 매력적인 도시가 되고 있다



 전 10시 경에 도착한 코펜하겐은 내가 밟은 첫 번째 북유럽 국가였다
많은 호기심과 행복한 여행의 모습이 많은 사진에서 발견 되는데 특히 첫 번째 봤던 덴마크의
모습은 비행기에서 내리고부터 배에 올라타기 까지 모든 모습이 기억속에 남아 있다
그만큼
바이킹의 후예인 그들의 오랜 역사는 바이킹을 떠나서는 만날수 없는 듯 가이드의
역사 이야기는 거의 바이킹의 이야기가 대부분이였다,
그리고 많은 부분의 여행이 바이킹 박물관에 맞혀져 있었다,


 오후 1시경에 점심을 먹고 코펜하겐의 중심을 흐르는 작은 배를 타고 근처의 건불들을 둘러보는 관광을 했고
이름 모를 성을 관광했으며 다운타운이라고 하는 코펜하겐의 최고 중심지 시내를 둘러봤다.올드타운이라 불리고 있다,
그 시내 중앙에는 오랜 역사와 함께했다는 공원이 있었고
그공원 한쪽엔 유일무일한 네온싸인이 하나 있었는데 그 네온에는 samsung 라고 하는 눈에 읶은 글씨가 보였다
시에서 이곳의 미관을 보전하기 위해 전혀 네온을 허가 해주지 않는다고 했다,
유일한 네온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삼성이라고 한다 가이드는 이곳을 특별히 구경 시켜준 이유는
바로 이것 삼성이란 글자를 보여 주기 위한 것 같았다,
그곳 근처에는 고풍스러운 건물이 질서 있게 서 있었고 오래된 전철도 삐거득 거리면서 다니는 것이 보였다
오후 5시경에 우리는 배를 타기 위해 부둣가로 향했다


 거리는 6월이였지만 추웠다,
이들에겐 따스한 햇빛을 최고의 은총이라 할정도로 그리워 하고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서유럽과 북유럽은 겉으로 느껴지는 부분이 차이가 난다,
바로 날씨다,
약간 을씨년스러운 북유럽 덴마크..
이시간  서유럽은  많이 더웠는데,,.




 

 





 우리는 제법 여유를 가지고 덴마크의 주요 관광 코스를 관광했다,  





















 





 

작년에는 서유럽을 돌아봤기에 사실 이번에는

 사막이 있는 이집트 쪽으로 떠나보고 싶었다,
아직 해보지 않은 배낭여행에 대한

 두려움과 용기가 없어 떠나지 못했다


해보고 싶은 사막의 여행은 하지 못했지만 다음으로 미루고,,

이번엔 이곳 북유럽을 크루즈을 통해

본 것만으로도 만족을 해야겠다,


특히 덴마크는 주변의 사람들도 많이 와보지 않은 곳이다,
비행기에서 내려 바로 여행을 시작한

덴마크의 이미지는 추웠다,


미국에서 오래 살아서 그런지

난 이렇게 문명국가는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


첫 이미지는 별로 새로움이 없는듯,,

독특한 외국의 이미지를 느끼지 못했다


 나는 위험은 하지만 관광객이

 별로 없는 오지가 좋다


여행에서의 고생은 고생이 아니다,

그 고생이란 것도 여행 일부라 생각한다,


오지에서 고생하고 미국에 돌아와서 집으로 향하는

 미국의 프리웨이는 그야말로 하늘나라의

 고속도로처럼 아름답고 멋지고 훌륭하다,


오지에서의 여행 속에 내가 사는 미국이

얼마나 좋은지 새삼 께딿을때,

그것이 바로 여행의 결정채라고 생각한다,








크루즈을 탔다,
배 안에서 덴마크 항구를 쳐다보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