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 이야기/라오스 15

라오스 독립문 빠뚜싸이

승리의 문을 표현해서 지어진 빠뚜싸이…. 프랑스 시절에 지어진 것으로 현재 성문만 덩그러니 놓여 있다, 이것 역시 3차례나 개보수를 했다고 한다, 지금 현재는 원래 지어졌던 것과는 많이 다르다고 한다., . 오늘밤 한국으로 돌아간다는 생각에 마음이 조금은 급해졌다, 일단 계획했던 미얀마의 여행은 포기를 해야 했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고통이었던 이빨 하나가 너무나 흔들거리고 부어 올랐다, 그러나 이곳 라오스의 어느 치과에 가서 치료를 받기에도 싫었다, 한 주일가량 아픈 고통을 참으면서 했던 이번 여행은 이것으로 막을 내리고 미얀마는 내년으로 미뤄야겠다, 내일 한국을 가지만 더운 호텔방에 쳐 박혀있긴 싫었다, 이가 아프고 머리가 아픈 여행도 여행의 일부다, 라오스 하면 아픈 어금니가 생각날 것이다, 고통이..

라오스 파탓루앙(황금사원)

라오스 지폐에도 그려져 있다는 이곳은 라오스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 코스다, 라오스 비엔티안에 가면 꼭 이곳을 봐야 한다고 했다, 이곳은 더운 라오스의 햇빛을 받고 있으면 더욱 반짝거리는 것 같다, 왠지 차분한 느낌과 소박한 느낌이 드는 이곳 사원은 태국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수도 비엔티안의 중심에 위치해 있으며 부처의 대형 사리 탑이다, 라오스에서 가장 신성시되는 보물로 취급받고 있다, 원래는 3세기경 힌두교 사원으로 지어졌으나 인도의 승려 아라하타 등이 선교하면서 부처의 가슴뼈를 가져와 이곳에 보관했다고 전해진다 13세기 크메루의 침공으로 크메루 사원으로 사용되면서 상당 부분 파괴되었다, 1566년 셋 타리타 왕에 의해 높이 45m 길이 69m 위 사리탑을 세우고 그 주위에 4개의 사원을 지..

라오스 왓 호 파케우 사원

수도를 이곳에 천도한 시기는 1560년이다 아마도 메콩 강이 주요 이유였을 것으로 추측해본다, 전에는 루앙프라방이 수도였다 이곳 사원는 비엔티안으로 천도할 때, 란쌍왕국의 상징이었던 에메랄드 불상을 모시기 위해 건축되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1779년 태국과의 전쟁에서 건물은 소실되었고 에메랄드 불상은 약탈당해 현재까지도 방콕의 왕궁사원에 모셔져 있다. 프랑스에 의해 1936년 재건되었다 현재는 호크프라크박물관(Museum of Hokprakow)으로 사용되어 국내 각지로부터 모아진 불상을 비롯해 역사적,종교적 예술품(야자잎에 쓴 필사본,크메르 비문등)을 전시해 놓고 있다. 이곳 사원안에들어 갈 때는 신발을 벗어야 했다, 사람이 많아서 겉으로만 보고 왔는데 지금은 조금 아쉽다, 들어가서 두 손 모아 기도..

라오스 비엔티안의 사원

왓 씨 사케 사원(Wat Si Saketh Temple) 메콩강 인근에 만들어진 비엔티안은 라오스의 수도로 16세기에 만들어졌다 이곳을 수도로 만든이는 세타티라트왕(King Sethathirat, 1548-1571)'이며 루앙프리망 에서 이곳 비엔티안에서 수도를 옮겼다고 기록되어 있다, 다른 나라도 그럿듯 라오스의 역사도 파란만장하다 슬프고 우울한 가장 대표적인 역사는 그리 멀리있었던것도 아니다, 1828년에 있었던 태국과의 전쟁이 바로 그것이다 비안티안은 태국과의 전쟁에 패했으며 도시는 군대에 의해 불에 타고 두 개의 도시로 분열되었다. 메콩강 우측의 도시는 태국의 영토가 되었고 좌측의 도시만이 라오스의 영토로 남았다. 오늘날의 비안티안은 본래의 크기에서 절반으로 줄어든 규모로 남았다. ‘티엔(tian..

라오스의 길거리 시장과 한인 게스트 하우스

몽족 마을을 방문하고 나는 수도 비엔티안으로 다시 돌아가야 했다, 이곳 라오스에 오자마자 아프기 시작했던 어금니 한쪽이 너무 부어오르고 아팠기 때문이었다, 라오스 방비엥에서 다음은 루앙프리망으로 향하는 코스를 잡았었지만 나만이 다시금 비엔티안으로 돌아가야 했다, 혼자만 비엔티안으로 돌아 오는 날, 같이 여행을 했던 일행분들과 아쉬운 작별 파티를 했는데. 한국 사람이 운영하는 식당이었다, 그곳에서는 모텔도 운영하고 있었는데. 인상적인것은 그 식당에서 밖으로 펼쳐진 경치가 너무나 멋있었다, 비록 그 한국 사람 주인과는 대화는 하지 않았지만 이렇게 경치 좋은 곳에서 모텔업과 식당을 한다면 남부럽지 않을 것 같았다, 몸 상태가 좋았다면 타국에서 먹는 소주를 취할 정도로 마셨을 것이지만 이날을 전혀 술을 못했다,..

라오스 불쌍한 몽족의 아이들

몽족을 처음 만난 것은 1992년도 프레즈노에 와서였다, 이곳 프레즈노엔 중국인도 필리핀인도 베트남인도 라오스인도 아닌 몽족(Hmong people)이 있었다, 이들이 인구의 숫자도 5만여 명이 있다고 했다, 적은 숫자가 아니다 내가 한국 사람이지만 동양인이라 프레즈노 백인들에게 나 역시도 몽족으로 대접을 받았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프레즈노의 동양인은 몽족이라는 당시엔 들어보지도 못한 민족이 와서 살고 있었다 점점 이들 몽족에 관심이 생겼고 이들에 대해 많이 물어 보며 자연스레 몽족인 친구도 생겼으며, 몇 명은 직원으로 같이 일도 하고 있다, 그리고 이들 몽족은 프레즈노에도 많이 있지만, 미국의 동부 필라델피아에도 수만 명의 몽족이 살고 있다고 한다., 유럽 특히 프랑스에도 많은 수의 몽족이 있다,..

라오스 방비엥의 147개 계단위의 동굴

일찍이 우리의 가이드는 호텔 앞에서 기다려줬다, 오늘은 이곳의 동굴을 구경하고 점심을 먹고 몽족 마을로 가기로 했다, 먼저 동굴 구경을 했다., 동굴은 탐짱 공원 안에 있었는데 동굴 이름도 탐짱 동굴이다, 쏭강과 산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조화를 만들고 있었다, 호텔에서 나오고 자동차로 30분 정도 이동 후에 어제의 그 쏭강을 다시 만났다, 어제 카아킹을 하다 우연히 봤었던 다리 하나가 있었는데 이번엔 그 다리를 건너 산 쪽으로 올라가는 코스였다, 다리를 건너서 산을 향해 1시간 정도를 올라가니 그곳엔 147개 계단이 앞에 나타났다, 147개의 계단은 불교와 연관된 숫자라 한다, 그 계단을 올라가서 동굴을 구경했다, 좀 시시했던 것 같다, 내 눈에는 그리 큰 규모의 동굴은 아니다, 오히려 동굴을 내려오고 그..

라오스 방비엥 쏭강에서의 카악킹

방비엥에서의 탐낭 동굴 탐험을 하는 날이다, 안내자는 수영복을 입고 오라고 한다. 카메라 귀중품을 가져갈 수가 없다, 웬만한 장소면 억지로라도 카메라를 가져갔을 테지만 이곳 동굴을 도착해서 보니 엄두가 나지 않았다, 동굴 속에 물이 고여있고 투뷰를 타고 동굴 위쪽에 매달려있는 줄을 잡아당기면서 동굴 속을 돌아오는 일종의 수중 동굴 탐험이었다, 라오스말로 탐, 이라는 말은 동굴이라고 한다, 수영복으로 갈아입은 우리 일행은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튜브를 타고 물이 곽 차 있는 동굴 속을 구경했다, 물과 같이한 동굴이었기에 사진을 찍을 수 없었다, 1시간 정도의 물속 동굴을 구경한 우리는 일정에 따라 쏭강이라는 강가로 가서 카약을 타면서 약 2시간 동안 물줄기를 타고 흘러내려 갔다, 신기한 것은 2시간여 걸..

라오스 방비엥의 재래시장과 호텔

방비엥으로 가는 일행 중에 4명은 친한 친구들 같았다, 이분들이 방비엥에서의 여행은 같이 하자고 제안을 했고 나도 그러길 바랐다, 호텔도 같은 곳에서 묶기로 했다, 단체로 예약하면 뭐든지 싸질 수 있다고 한다,,, 갑자기 동료가 생겼다, 같은 곳 같은 마음으로 이곳 라오스에 온 사람들이다, 뭔가 통했다, 나이와 사는 곳과 하는 일이 틀리지만 같은 곳, 보고 싶은 방향이 같았기에…. 같이 여행을 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난 방비엥에 호텔이 예약되어 있지 않았지만, 이들은 요즘 비수기라 어떤 호텔도 구할 수 있다고 한다, 난 이들이 먼저 잡아놓은 호텔에다 나도 방을 하나 잡았다, 나머지 한국 부부도 우리와 같이하기로 했다, 이렇게 우연히 단체가 되었다.. 우리가 들어간 호텔 로비는 초콜릿 색깔로 전부를..

라오스 방비엥으로 가는길

다음 날 아침 9시경 한국 식당으로 택시를 타고 갔더니 70대로 보이는 남자 4분 60대 부부로 2명 그리고 라오스 사람 2명 그리고 운전사와 나, 이렇게 10명이 방비엥으로 출발하기 위해 나와 있었다, 70대의 남자분들은 1진은 먼저 한국으로 갔고 자기들은 2진으로 라오스 구경을 완전히 끝마치기 위해 남아 있다 했다, 60대의 부부팀은 국외로 여행 온 것이 이번이 두 번째며 중국여행이 너무 좋아서 라오스도 좋을 것 같아 와봤다 한다, 행복해 보인다,..... 라오스 사람은 일자리가 있어 급하게 방비엥으로 간다고 했다, 나중에 차 안에서 안 것인데 한국 식당 주인이 방비에까지 가는 차비를 전부 틀리게 받았다, 라오스 사람은 7불 정도를 냈고 70대 4명은 한 사람당 10불을 냈다, 60대 부부는 일 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