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터어키 이야기/그리스

그리스 고린도 유적지

김 항덕 2020. 6. 30. 08:31

고린도 시에서 7.8km 떨어진 

아크로코린트 산 위에 있다 

 

기원전 146년 로마군의 침입으로

 폐허가 된 도시국가인 아테네를 

기원전 44년 로마 황제 시저가 재건한

 로마 시대의 유적이다 

 

이 유적지는 유네스코 지정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으며

 성서에도 이름이 나오는 도시다, 

 

521년에 지진으로 큰 타격을 입어 

중세 이후 쇠퇴하다가 1858년 또다시 지진으로 파괴되었다. 

 

아폴로 신전

BC 6세기에 아폴론을 모시기 위해 건설되었고 

BC 46년에 로마인들에 의해 재건되었다, 

 

올림피아의 헤라 신전 다음으로 오래된 것이다 

현제도 7개의 기둥이 남아있다, 

기둥 한게당 높이는 7.2 미터, 직경은1.8 미터이다

 

 

 유적지를 찾아 구경할 때면

갈증을 느끼는데 이번에도 그랬다,  

몇년전 이태리의 폼페이오를 구경할때도 목이 말랐던 경험이 있다,

 

이곳에서도 갑자기 목이 말라 물을 찾았는데

 물은 이곳에 없고 

차 안으로 들어가야만 있었다, 

 

 점심을 먹고 바로 이곳을 들렸는데

많이 짠 음식을 먹은 거 같다, 

 날씨가 더워서 목이 마른 것 하고는

분명히 다른 목마름이었다, 

혹시 다른 사람들 손에 물병이 들려있는지 보니

 거의 전부가 물을 차 안에 두고 온 거 같아 보인다, 

아무도 손에 물병을 들고 다니는 사람이 없었다, 

 

이곳서 1시간 정도만 있으면 될 것 같아 

꾹 참아 보기로 했는데 

이상하게도 가이드는 이곳에서  그리스 여행 중 가장 많은

 자유시간을 줬다,, 2시간을 준 것이다, 

그리고 난 하필 이런 시간에 목이 말라

빨리 차 안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한국을 여행하거나 중국을 여행을 할 때도 

이렇게 부서진 건물터를 구경했나 생각해 보니

 역사가 긴 중국을 여행할 때도 

이렇게 부서진 건물을 구경하지는 않은 것 같았다, 

 

개인적으로 이런 유적지는 

여행 중 단 한 군데만 보면 그것으로 만족할 것 같다, 

그리스 여행도 왠지 모르게 부서진 유적지를 보게 되었는데

 취향으로 치면 절대로 

내가 좋아하는 풍경은 아니다, 

 

기를 받고 싶은 여행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여행길에 오르는데 

기를 받기는커녕 부서지고 깨진 모습에 마음만 찹찹하고 

오히려 기가 죽는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상하게 이런 곳에 좀 더 머물고 싶지가 않은데

 지나온 세월이 수천 년이요 

앞으로 이런 모습으로 수천 년을 내 벼려둬야 하는 곳을 본다면 

이곳은 여행하는 여행지가 아니라 

말 그대로 유적지 탐방일수 있겟다,

 "그리스 여행"이 아니라 

그리스 "유적지 탐방"이란 제목이 왠지 어울리지 않을까 싶다

 내 개인의 생각이다, 

 

하지만 신앙심이 깊은 사람들은 조금 다를 것 같다, 

성서에 나오는 이름들을 따라 여행하는 것은

 그들만의 또 다른 재미가 있을 것이고

 이런 곳에서 예배와 성경을 읽어보는것도

 나름 좋은 경험일 수 있으니까,

 

 

 

 

황제 아우구스투스누이 옥타비아를 기리는 신전 기둥이다, 

현재 남아있는 기둥은 세게만 남아있다,

 

 

유적지에서 부서지고 벽에 걸려있던 그림과

 당시에 사용했던 항아리 같은 도자기 등을

 한데 모아둔 박물관이 있다, 

당연히 이곳에 오면 당시의 사람들이 

어떤 조각품을 집에 두고 살았는지를 구경해야 했다,

 

이천 년 전에 도시가 새워 졌으니

 당연히 이곳의 모든 물건은 그 당시에 만들어 진 것이다,

 

 

그리스여행을 갔다 온 후 얼마 안 있어 

친하게 지내는 지인을 만나 

그리스 여행에 대해 대화를 하는 도중 

그분은 그리스의  사람 조각상들은 유난히 머리 부분이 없는 것이 보이는데

그 이유를 아느냐고 물었다, 

 

난 단순히 오래된 유적지라

 당연히 머리 부분은 떨어져 나가 훼손이 되었을 것이라 예기를 했는데,

 그분은 그게 아니었다, 

 

당시 로마사람들은 집집마다 

조각상을 놓고 감상하는 것이 유행이었는데 

집에서 살다 이사를 할 경우

무게때문에 그 조각상 전체를 갖고 갈 수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머리 부분만 잘라서 이사를 하였고

 이사를 간 후 또 다른 조각상을 만들고  

가져온 머리를 붙여놨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랬나, 

이곳에서 본 사람 조각상은 전부 머리가 없었다

 

 

 

가이드의 설명이 있었다…. 

앞의 그림은 당시에 바닥 부분을 이곳에 걸어놓았다고 한다, 

그 당시의 발전된 모습을 짐작할 수 있다,

 

색을 칠하고 자기를 표현하는 방식을 이천년 전에도 

이렇게 뚜렷하게 표현했다, 

그림의 기교는 많이 떨어질 수는 있겠으나 

당시에도 색을 칠해 표현을 할 수 있었다는 표현의 방식에 대해

 많은 생각을 갖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