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유럽 이야기/헝가리 부다페스트

헝거리 부다페스트는 세계 최고의 야경

김 항덕 2020. 7. 1. 08:43

야경으로는 세계 최고라고 찬사를 받고 있는 이곳에서 

 늦은 밤까지  야경을 바라보며 

맥주와 저녁을 먹어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배를 타고

 세체니 다리를 중심으로 한바끼 돌아보는 것이

 가장 보기 좋은 구경이었다, 

 

멎진 야경을 지닌 이밤에 

사진을 찍어보는 것이 나엔겐 최고의 여행의 즐거움이겠지만

 삼각대도 없이 잔잔히 흔들리고 있는 배 안에서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그리 쉽지가 않았다, 

 

내 방식대로 

보기 좋은 사진이 나오길 바라며

 그래도 다른 곳보다 정성을 다해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아래의 실린 사진은 배를 타고 촬영한 것인데 

 

카메라에 찍힌 순서대로 올린것임)

아마 한국 단체 여행으로 이곳을 구경했다면 

틀림없이 옵션으로 50불 이상은

 가이드에게 주었을 것이 분명했지만 

난 7불을 줬고 

도중에 음료수도 한 병 서비스로 받았다, 

 

이 배안에는  중국인 단체 여행객들이 아래층을 

전부 차지하고 있었다,

 개인으로 오건 페키지로 왔건 같은 배를 탈것 같다,, 

배낭을 멘 한국의 젊은이들도

 여기저기 많이들 들어와 있다, 

일반인들은 거의 다 2층으로 올라갔다,

 

귀에 있는 한국말이 많이도 들렸다, 

 

세체니 다리를 중심으로 

가장 환호성을 받는 국회의사당 건물을 지나

 또 다른 다리 쪽 끝까지 같다가 돌아오는데 

약 1시간 정도 걸린 거 같다, 

 

이 배는 오늘 마지막 배여서 그런지

 사람들이 많이들 타고 있다,

 하지만 군데군데 자리는 많이 있었다, 

 

나는 제일 늦게 이 배에 올라탔는데 

비록 창가 쪽은 아니지만 여유 있게  살살 불어오는 

이층의 어느 자리에도 

세계인들이 환호하며 

최고의 찬사를 주는 이곳의 멎진 광경을

아주 잘 볼수 있었다,

 

 

 

 

국회의사당이 보인다, 

 

많은 사람이 갑자기 

국회의사당 쪽으로 몰려들었는데

 당연히 나도 그쪽으로 가서 카메라를 들이댔다, 

 

처음에 왜 이곳에서 사람들이 몰려들까, 몰랐는데 

국회의사당의 화려하고 

독특한 불빛과 분위기를 느끼는 순간 

나도 뒤질세라 틈새로 기어들었고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안에서 음료수는 무료이지만 

맥주와 와인은 돈을 내야한다,

 

의자 앞에는 테이블이 놓여 있었고 

와인과 맥주를 마시면서 여유있게 구경을 할수가 있다,

하지만 우리는 모든것을

 이곳 야경을 보는데만 집중을 했다,

 

화려하고 멋진 부다페스트의 밤은 

이곳에서부터 그 유명 새를 타기 시작했으며 

그 중심에는 이 유명한 세체니 다리가 있다, 

 

세체니 다리는

부다페스트 도나우 강에 새워진

 헝가리 최초의 다리이며 1849년에 개통되었다, 

 

다리를 만들 때 가장 큰 후원자인 

세체니 이슈트반의 이름을 따서 세체니 라고 하는 

다리이름이 생겼으며 

영국의 설계기사 클라크와 건축가 애덤을 초빙해 건설했다..

 

 

 

 

세체니 다리는 부다와 페스트라는 

이름의 도시를 동과 서로 이여주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는 다리다,

 

 

국회의사당을 사진으로 찍고 있는데 

인상이 남는 장면은 

지붕 위쪽에 맴돌고 있던 수많은 새들의 모습이었다, 

 

당연히 그 새들을 향해 수많은 셔터를 눌렀는데 

전부 흐리게 나왔다, 

 

사진을 쫗아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배의 창가 쪽에 카메라를 걸쳐놓고 있었고

 많은 사람이 이 새떼들과 

국회의의사당의 모습을 잡았을 거라 본다, 

집에 돌아가면 사진 공부를 해봐야겟다,

 

세체니 다리 아래쪽을 통과한 배는 

국회의사당 쪽을 향했고 

잠시지만 국회의사당 쪽에서 배는 잠깐 멈춰주었다, 

 

특히 이 부분에서 많은 사람의 함성이 들렸고 나 역시 그랬다,

 

 

 

 

 이 시간 배를 타고

이 순간을 즐기는 사람들은 우리뿐만이 아니었다, 

우리 배 뒤쪽으로 많은 배가 줄줄이 일정한 거리를 두고 

같은 코스로 따라오고 있었다, 

 

배 안에는 영어와 중국어 독일어 등을 섞어 

약간의 설명이 있었는데 

배 종류 중에

 오로지 춤과 파티를 위한 배가 있고

 부페 같은 식당을 운영하는 배가 있으며 

호텔처럼 이곳 물 위의 배에서 

잠을 잘 수 있는 배도 있다고 한다,

 

 

 

 

 

 

 

 

 

 

세체니 다리…. 

 

이 다리를 배를 타고 아래쪽으로도 지나갔지만

 걸어서 이 다리를 지나가기도

 여러 번을 했다, 

 

이 다리는 걷다 보면 

1800년도의 기술로 이런 다리를 만들었다는 것에 

당시의 국력을 볼 수가 있지만 

이 다리를 만들 때 

영원히 대대손손 남겨줄 수 있는 예술품으로

 만들었다는 것에 더욱 찬사를 받는다,

 

 

 

 

아래 파란색 내용은 ㈜살림출판사가 제공한 내용입니다,

부다와 페스트의 다리 건설은 19세기 가장 위대한 헝가리인 중 하나였던

 이스트반 세체니(Istvan Szechenyi, 1791~1860)의 주도로 시작된다. 

세체니 집안은 헝가리의 귀족 계급 중에서 둘째라면 서러워할 정도의 명문가 중 명문가로,

 부와 명성, 탁월한 문화감각까지 함께 가졌던 집안이다.

 

그의 아버지 페렌츠(Ferenc)는 자신의 소장 유물과 서적을 

국가에 기부해 헝가리 국립박물관과 세체니국립도서관의 실질적인 설립자가 되었다. 

어머니 율리아 페슈테티치(Julia Festetics)가 

일생동안 수집해 기부했던 기암괴석 역시 헝가리자연사박물관의 모태가 된다. 

그리고 아들인 이스트반 세체니는 헝가리 학문의 전당인 

헝가리학술원(MTA)의 설립자이자 

진보적 경제관을 가졌던 민족주의의 상징적 인물이다.

 

그가 부다와 페스트 다리 건설에 나선 계기는 정작 따로 있다. 

1820년 자신의 영지를 방문했다가 아버지의 부음을 받고 

장례식 참석차 급히 돌아온 세체니는 

다뉴브를 건너지 못했다. 부다와 페스트를 연결하는

 배편이 기상 악화로 무려 8일간이나 두절되었기 때문이다.

 이에 격분한 세체니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다리를 놓겠다는 결심을 굳혔다고 한다.

 

 

그는 명문가의 자손답게 자신의 1년 수입을 먼저 내놓고

 다리 건설을 추진했다. 

이는 곧 국민운동으로 번졌고 다리 건설을 위해 국채가 발행되는 계기도 되었다. 

그는 당시 영국에서 다리 설계로 유럽에서 명성이 드높았던 

윌리엄 T. 클라크(William Tierney Clark, 1783~1852)에게 설계를 위촉했다. 

현수교의 개척자였던 클라크는

 런던 템즈강의 첫 번째 현수교인 해머스미스(Hammersmith)교(1827년 완공)를 비롯해 

멀로(Marlow)교(1932년 완공) 등을 설계한 인물이다. 

그래서 세체니 히드는 런던 해머스미스의 다리와 가장 비슷한 것으로 손꼽힌다.

 

세체니는 또 스코틀랜드 출신 애덤 클라크(Adam Clark, 1811~1866)를

 헝가리로 초빙했다(설계자와 현장 감독 모두 성(姓)이 클라크지만

 두 사람은 사실 아무런 혈연관계가 없다). 

애덤 클라크는 공사기간 내내 

다리 완공에 심혈을 기울였으며 부다 왕궁이 있는 바르 헤지(Var-hegy) 아래를 뚫는 터널까지 설계했다. 

그래서 헝가리인들은 부다 쪽 다리 입구의 광장을 

'애덤 클라크 광장'이라 명명하여 지금까지 고마움을 나타내고 있다.

 

란치히드는 그런 연유로 헝가리?영국 친선의 상징이 되었다.

 헝가리가 유럽연합(EU)에 가입한

 2004년 5월 1일 아담 클라크 재단(총재는 니젤 토르프(Nigel Thorp) 전 헝가리주재 영국대사)이 

출범하여 1천만 포린트를 모아 

란치히드 건설의 주역 세체니와 아담 클라크를 기념하는 동상을 만들기로 하고,

 현대조각가 임레 바르가(Imre Varga)에게 작품을 위촉했다.

 

 

1842년 다리 공사가 시작되긴 했지만 

어려운 고비도 많았다. 완공을 코앞에 두고 벌어진 1848년부터

 2년간의 대 오스트리아 독립전쟁 땐 파괴 일보직전까지 가기도 했다.

 전쟁이 완전 실패로 끝난 이듬해 11월 21일 준공식이 열렸다. 

부다와 페스트가 처음으로 한 도시가 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 것이다.

 

준공식장에선 해프닝도 적지 않았나 보다.

 이 다리 초입에는 사자 동상이 한 쌍씩 모두 네 마리가 안치되어 있는데 

한 아이가 갑자기 "아니, 사자 입에 혀가 없잖아!"라며 고함을 질렀다고 한다.

 아이의 말에 너무도 자존심이 상한 조각가는 

그만 그 자리에서 다뉴브강물에 뛰어들어 자살하고 말았다는 얘기가 전해온다.

 

하도 이상한 소문이 꼬리를 물어서인지

 후대 역사가들이 주의 깊게 조사까지 했는데, 

문제의 조각가는 다뉴브에 몸을 던진 적도 없으며 행복하게 여생을 마감했다는 조사결과까지 나와 있다. 

다만 그런 문제가 제기되기는 했던 모양이다.

 동물학자들까지 사자상을 면밀하게 조사했고 

본래 사자 혀가 뒤쪽으로 치우쳐 있어 쉽게 볼 수 없다는, 조각가에게 꽤나

 우호적인 유권해석까지 붙었다. 

이래저래 다리에 얽힌 설왕설래가 많긴 했던 모양이다.

 

란치히드가 독립전쟁에선 살아남았지만

 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 독일의 공격엔 견디지 못해 일부 교량이 붕괴되고 말았다. 

워낙 중요한 다리라 전후에 곧바로 재건되었으며 

부다페스트의 경관을 보여주는 가장 상징적인 조형물로 남아있다.

 

 

 

 

 

 

 

 

 

 

저녁 12시가 넘었고

 우리의 호텔은 바로 이 다리 건너에 있었다, 

 

버스나 택시를 타지 않아도 

걸어서 바로 들어가면 되었기에

 이 다리를 걸어서 가보기로 했다, 

저 멀리 관광객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걸어가는 것이 보였지만

 거의 지나다니는 사람은 없었다, 

 

여행하는 입장이지만

 12시가 넘어서 이렇게 이 다리는 걸어 간다는 것에 

위험을 느끼기도 했지만 

그냥 걸어보았다, 

 

다리를 건너와서 보니

 밤 풍경을 찍으려는 카메라들이

 한 무더기 보였고 그들은 거의 다 동양사람들이었다,

 

 

세체니 다리 위에서 국회의사당을 향해 찰영,,

 

 

 

저녁을 이상하게 부다페스트 중심도시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곳에서 

먹게 되었다, 

 

한국 식당을 찾는다고 헤매다가 

결국 먹지 못하게 된 후 근처의 좀 좋아 보이는 식당에서 

저녁을 먹자고 들어갔다, 

 

식당의 분이기는 일반적이며 

평범하게 보였는데

 한가운데 약 20여 명의 가족이 모여서 생일파티인 듯 

애들도 시끄럽게 아우성을 치고 어수선했다, 

 

구석진 곳에서 

맥주와 함께 저녁을 먹었는데 

우연히 생일 파티가족들이 불렀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커다란 헝거리 민속 악기처럼 보이는 

배가 불룩한 악기와 

타와 전자 피아노를 등을 곁들인 

음악도 함께 했다, 

주인공은 우리가 아니었지만, 인상에 남았다, 

 

저녁을 먹은 후 

우리가 관광객임을 안 식당에서

 특별히 안전하다는 택시를 불러 줬다, 

그리고 우리를 헝가리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야경의 한 중심가에 내려주었다, 

 

그리고 강가를 따라 무작정 걷고 있는데

 한 소녀가 다가와 야경을 구경할 수 있는 배를

 타보지 않겠느냐고 말을 걸어왔다, 

얼마냐 하니 약 7불 정도였고

 음료수도 준다고 한다, 

오케이 그 정도면 타보자 했는데 

그 배를 타려면 16번까지 가야 한다고 한다, 

그리고 마지막 배니까

 20분 안에 가지 않으면

 배가 떠나니까 서둘러야 한다고 했다, 

번호가 어디 있느냐 하니 

강가마다 번호가 적혀 있는 것을 가르쳐 주었다, 

그리고 우리 바로 앞의 번호는 4번이었다, 

 

16번까지 12개의 숫자를 지나가야 하는데

 가능할까 궁금했는데

 그 소녀는 같이 빨리 띠어 가자고 했다, 

그래? 달려고 띠어서라고 탈 건 타야지…. 그래 달리자, 

 

우리는 그 소녀와 함께 4번에서부터 16번 거리까지

 달리기 시작했는데, 

번호 하나를 건너는 공간은 짧은것은 약 50m 였지만

길게 늘여져 있던것은 100m도 넘는것이 있었다,

1000m를 달려가야 했다, 

헉헉거리며 달려가는데 

왜 그렇게 웃음이 나오는지 모르겠다, 

 

우리 3명은 어린 소녀를 앞세우고 

배 안에서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다뉴브 강을 달리기 시작했다, 

3명 전부는 

앞에 커다란 카메라가 덜렁거리고 있었고 

뒤에는 조그만 배낭도 매달려 있었다, 

 

앞에서 달리는 소녀는 

우리가 점점 늦어지자 

빨리 달리라고 손짓을 했는데…. 

그게 맘처럼 빨리 가지는 것이 아니다, 

 

"아구, 힘들어라", 겨우 달려서

 막 떠나려는 배에 올라탔고 우리는 참을 수 없는 웃음으로 한동안 

사람들이 있었는데도  소리 내 한참을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