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민 이야기 16

카지노 때문에 망쳐버린 이민 초기

무턱대고 벤데라는 것을 한답시고 봉제공장을 돌아다니면서 옷가지들을 가지고 막상 밖으로 나와 처음 마주하는 파라과 주민의 초인증 없는 집 앞에서 손뼉을 치며 쉬고 있는 사람들에게 옷을 사라고 소리치는 내 모습도 이상하지만 그런 것이 타고난 기질처럼 아무런 창피함을 느끼지 못하고 하는 나도 참 이상스러웠다, 아주 자연스럽게 행하고 있는 내 모습은 왠지 이민 생활을 아주 많이 한 고참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남들은 너무나 창피해서 도저히 이들의 집 앞에서 소리를 지르지 못했다고 하는데 난 너무나 자연스럽게 아무 집이나 들어가고 소리 지르며 내가 갖고 온 옷을 팔기 시작했는데 거의 스페인어를 하지 못했지만 손짓 만으로 옷을 많이 팔았다, 그렇지만 파라과이의 날씨는 그 당시 나에겐 그 어떤 장애물보다 더한 고통이기..

돈을 주니 면허증이 나왔다,

파라과이 생활 중 가장 상식을 깨버린 사건은 운전하지 못했는데 면허증을 받은 거와 차를 먼저 사고 운전을 배웠다는 거였다, 운전 면허증을 내주는 건물 안은 많이 분비고 복잡했던 곳이었는데 그곳에 발을 디뎌 놓는 순간 수많은 정체 모를 사람들이 다가와 면허증을 해 줄 테니 만 과라니(당시 파라과이 화폐)를 내라고 해서 얼떨결에 돈을 냈다, 1시간도 안 되어 면허증을 만들어서 왔는데 정식으로 정부의 인증을 받은 면허증이었다, 상식적으로 면허증은 운전을 테스트해 보고 시험도 보고해서 나오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한국에서 친구가 차를 몰고 다니기 전 면허증 시험을 보러 당시 흑석동으로 몇 번 같이 다닌 적이 있었다, 배우고 공부하고 필기와 실기시험을 보고 면허증이 나오는 게 거의 상식이었는데.,,, 파라과이는 ..

그렇게 아주 조금씩 이민 생활을 알기 시작했다

파라과이는 브라질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볼리비아의 가운데 위치한 나라다, 이들끼리 말을 하길 파라과이는 남미의 심장이라고 자랑하지만 파라과이에 7년 동안 살아온 나는 전혀 심장과 같은 중심의 나라가 아니라 본다 나라의 위치는 그럴 수 있으나 내가 본 이 나라 실상은 브라질 아르헨티나 사이에 끼워져 있으며 그들에게 세금 없이 물건을 팔아먹는 전형적인 거지 나라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나마 다행으로 여긴 것은 이 나라가 이렇게 불완전하며 부정부패의 국가였기 때문에 그나마 생존할 수 있었다는 기막힌 아이러니를 느낄 수 있었다, 세금이 많고 너무나 정직한 정치를 한다면 이런 가난한 나라에 들어와 왜 고생하며 이민 생활을 하겠는가,, 아무튼 이 나라에 들어온 한국 사람들 대부분은 옷에 관한 일을 하고 있었는데 예를..

pablo라는 이름과 새로운 싸인이 생겼다

파라과이에서 생활은 적응할 수가 없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울음이 나오고 몇 번이나 화장실 벽을 치고받고 , 그러나 이제 이곳에서의 생활은 현실이었고 비실거리면서도 살고는 싶었다, 이민 생활의 불편함은 조금씩 적응해 나가고 있었던 거였다, 본격적으로 이민 생활에 대한 적응을 해 보기로 했다, 먼저 이민 생활을 해야 할 때 먼저 고민해야 할 것이 두 개가 있다, 파라과이 사람들에게서 내 이름이 뭐냐고 여러 번 질문이 들어왔는데 그때마다 내 한국 이름을 불러주다 보니 그들은 당연히 내 이름을 기억하거나 불러보기에 어려움이 있었다, 이곳에 맞게 이름을 정해야 했다 이곳 사람들에게 스페인어로 생활하는 파라과이의 이름, 당연히 스페인어식으로 만들어지고 이곳 사람들이 나를 쉽게 불러볼 수 있는 이곳 이름이 필요했다 ..

뭐? 자식들 때문에 이민을 와서 살아???

파라과이는 동화 같은 나라였다 그곳에 살면서 늘 생각은 객관적이었다, 이 나라를 평가하는 것을 즐겼는데 결론은 이건 나라도 아니라는 것으로 끝을 내곤 했고 일기장에서도 수많은 글 중에 이런 나라가 있나??,, 하는 물음표의 연속이었다, 파라과이의 전체 인구는 당시에 3백만 명 정도 되는 것으로 기억하며 이웃에서 그리고 유럽이나 다른 나라에서 이민 와서 마구잡이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백만 명 정도 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언어는 스페인어이다, 약 100년 전에 이웃 나라 볼리비아하고 전쟁해서 남자가 거의 없다시피 해서 모계 사회인 나라, 그래서 인구를 늘리는 정책을 폈는데 이 나라에서는 강간이라는 단어가 존재하지 않고 섹스에 거의 오픈이 되다 싶은 나라, 길거리에서는 창녀가 많이 있고 어디에서건 마약을 쉽게 ..

동화 같은 나라 파라과이로 이민을 갔다

1983년 내가 기억하는 한국은 온통 최루탄 가스와 학생들의 대모로 온 나라가 시끌버끌 했던 군부의 암울한 시기였다,, 당시 나는 피가 쉽게 끓어오르던 용기와 패기에 넘치는 대학 3학년 때였다, 전두환의 광주사태로 당시 대학생이었던 나는 역시 같은 시대를 살아가던 다른 학생들처럼 학교에 가면 대모로 온 종일 보내고 집에 들어가는 길엔 학사주점에 들러 현 상황을 성토하며 하루를 보내던 시기였다, 운이 나쁘게도 이럴 즈음 난 친구 7명과 함께 경찰의 조사를 받게 된다,,,,, 그걸 안 아버지는 손을 써서 나를 해외로 보내게 된다, 그렇게 갑자기 아무 계획도 없이 갑자기가게 된 나라가 남미 파라과이었다. 정확한 날짜는 1983년 12월 6일이었고 아마도 그 주에 첫눈이 내렸다고 기억이 난다, 그리고 출발했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