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민 이야기

돈을 주니 면허증이 나왔다,

김 항덕 2020. 8. 3. 13:24

파라과이 생활 중 가장 상식을 깨버린 사건은 운전하지 못했는데 면허증을 받은 거와

차를 먼저 사고 운전을 배웠다는 거였다,

 

운전 면허증을 내주는 건물 안은 많이 분비고 복잡했던 곳이었는데

그곳에 발을 디뎌 놓는 순간 수많은 정체 모를 사람들이 다가와

 면허증을 해 줄 테니 만 과라니(당시 파라과이 화폐)를 내라고 해서 얼떨결에 돈을 냈다,

1시간도 안 되어 면허증을 만들어서 왔는데

 정식으로 정부의 인증을 받은 면허증이었다,

상식적으로 면허증은 운전을 테스트해 보고 시험도 보고해서 나오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한국에서 친구가 차를 몰고 다니기 전 면허증 시험을 보러 당시 흑석동으로 몇 번 같이 다닌 적이 있었다,

배우고 공부하고 필기와 실기시험을 보고 면허증이 나오는 게 거의 상식이었는데.,,,

파라과이는 면허증은 돈만 내니 나오고 말았다,

 

그 당시 1983년도엔 수많은 한국 사람들이 파라과이로 몰려들었는데

한국 이태원에 있는 파라과이 대사관에 돈 300불만 주면 

파라과이 비자를 내주고 있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나보다 한 달 두 달 전후해서 많은 사람이 나처럼 돈만 주고 면허증을 따내는 게

 유행일 정도로 수많은 한국 사람들이  면허증을 내 주는 건물에 자주 다녔고 많이들 보이기 시작했었는데

 거의 한국에서 운전해 본 경험이 없던 사람들이 많았다,,

 

이렇게 면허증을 먼저 받아놓고 얼마 후 차를 갖게 되었다,

독일산 폭스바겐에서 나온 파삿찌였다

 내가 세상에 태어나 운전도 하지 못한 상태에서 처음으로 차를 가져봤던 순간이기도 했다,

 

차는 길거리에 몇 달을 움직이지도 못한 채 새워두기만 했는데 이유는 운전하지 못 한다는 거였다,

매일 일주일에 몇 시간을 운전을 배우기 위해 학원 같은대를 다니기도 했지만 

참 겁이 많이 났던 시기가 아니었나 싶었다,,,,

그리고 그 차를 가지고 나갈 경우에는 내가 아니고 같이 나갈 친구나 이웃이

 그 차를 대신 몰고 가는 것이 거의 다일 정도로 그 독일 차는 몇 달을 그렇게

 주인인 나의 손을 거치지 않고 있었다,

 

그러다가 점점 차를 조금씩 몰기 시작했고

그 차를 이용해 그 당시 그곳에 처음 온 한국 사람들이 많이 했던

 벤데를 하기 시작하기도 했다,

vends라는 말은 스페인어로 판다라는 말인데 그곳 한인들 사이에서

 벤데, 라는 새로운 일이 만들어 지고 있었다

보따리를 짊어지고  집마다 돌아다니면서 파는 것을 줄여서 vends 한다는 표현으로 굳어졌다

난 벤데를 하기 시작했다,

차 안에 물건을 싣고 집마다 돌아다니면서 옷이나 시계나 전자제품을 팔며

 일주일마다 요일을 정해 놓고 수금을 하는 했다,

 

그렇게 차와 나의 인연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이민을 받아들이며 

 점점 그 사회에 물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점점 차를 이용하는 시간이 많아진 이후 결국 나의 생에 첫 번째 차였던 이 독일 자동차를

 나는 거의 매주일이면 분해를 해 보기 시작했다,

시작은 오일 체인지로 시작되었지만 나중엔 엔진 근처에 있던

카브레타까지 바꾸는데 겁이 나지 않았다,

모든 호스와 전깃줄 같은 것을 전부 직접 바꿔보는건 기본이었다,

 나중에는 브레이크도 직접 교체까지 했다 

내가 몰고 다녔던 그 빠샀찌 자동차는 엔진만 빼고 거의 모든 것을

 직접 해체 조립하는 것을 취미로 삼기 시작했다,, 

결국 그렇게 그 차는 거의 일 년도 안되어 내 손에 의해 완전 고장이 나고 수많은 부속품이 없어진 상태에서

 거의 고철값으로 팔게 된다,

 

이것이 나의 이민생활 첫번째 자동차의 추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