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주 하남성박물관
중국 하남성의 성도인 정주시에 있는 역사박물관으로서,
중국에서 소장된 문물이 제일 풍부한 박물관이다.
박물관은 기본 진열관과 전문테마 진열관, 임시전람관 등으로 나눠져 있다.
현재 13만 여개의 문물을 소장하고 있으며 그 중 국보급 문물이 4만여점이고,
1급, 2급 문물이 5,000여개를 차지하고 있다.
기원전에서 부터 상(商)나라, 주(周)나라때의 청동기,
역대 도자기, 옥기 등의
주요 전시물을 전시해 놓았다.
박물관으로 들어서면 로비에 바로 보이는 코끼리 동상
하남성박물관
베이징의 고궁 박물원, 상하이 박물관, 산시성 박물관과 더불어
중국 4대 박물관 중의 하나로 불리울 만큼 큰 규모를 자랑한다.
8개의 테마관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특히
테마관은중국문명사를 이해하는 압축판으로 유명하다.
하남성 박물관은 시내 중심 도로의 하나인 농업로(農業路)와
경칠로(經七路)가 교차하는 곳에 있다.
건물 외관이 영락없는 이집트 피라미드 모양인데,
관계자의 말에 의하면
중국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천문대인 하남성
등봉(登封)의 관성대(觀星臺)를 본뜬 것이라고 한다.
입장료는 무료다. 구석기 시대의 유물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유물들을 전시해 놓았는데,
상나라 때의 갑골문, 청동기 유물들이 특히 볼만하다.
중원고대문명지광? 고대 열쇠 모양이라 한다,
중원으로 가는 열쇠라는 상징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제주도 여행 후 친구들과 흥청망청 노는 것보다
부모님과 여행을 하기로 했다,
바로 갈 수 있었던 곳이 중국의 하남성 정주였다
중국은 황화문명으로 4대 문명국가로 손꼽힌다.
하남성은 세계 4대 문명 가운데 하나인 황화문명이 탄생한 지역이다.중국 최초의 왕조라고 할 수 있는 하(夏)나라 때부터 북송(北宋)에 이르는 장구한 세월 동안, 20여 개 왕조가 이 지역에 도읍을 정하였다.
중국 8대 고도(古都) 가운데 네 곳이 하남성에 있는데, 상(商) 나라 도읍지 정주(鄭州), 은(殷) 나라 도읍지 안양(安陽), 일곱 개 왕조의 도읍지 개봉(開封), 아홉 개 왕조의 도읍지 낙양(洛陽) 등이다. 따라서 하남성에는 고대의 역사 유물과 문화 유산이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정주가 제8대 고도로 공인을 받을 수 있었던 결정적인 계기는1950년 이래 정주 시내에서 상(商)나라 성터, 토담, 도기,청동기 유물 등이 대량으로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성터의 전체 면적은 25㎢로 확인되었는데 특히 토담은 판축(版築) 공법으로 한 층씩 쌓았으며, 전체 길이가 7㎞, 가장 높은 곳이 9m, 가장 낮은 곳이 1m이다.
이 성터 유적은 하남성 안양(安陽) 은허(殷墟)의 상나라 전기 유적보다 시기적으로 앞선 것으로 판명되었다. 또 정주시 남관(南關)일대에서 상나라의 외성 터가 발견된 것으로 보아 정주 시내의 상나라 성터는 도읍지였음이 분명하다
기원 전 1046년 은(殷) 나라를 멸망시킨 주(周)나라 무왕(武王)이그의 아우 희선(嬉鮮)을 이 지역에 봉하고 관국(管國)이라 칭했다.
수(隋) 나라 문제(文帝) 개황(開皇) 3년(583)에 이 지역을 처음으로 정주(鄭州)라고 불렀다
장군이 전장에서 죽었을 때 이 갑옷을 입혀 같이 보냈다 한다,
실제로 어느 장군의 묘에서 발굴되었다고 하는 갑옷
묘 안에서 발견되었다고 하는 여러 개의 집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정주의 유구한 역사는 풍부한 문화 유적을 남겼다. 정주에는 1,400여 곳의 문물과 유적이 있다.그 가운데 국가급문물보호단위(国家级文物保护单位: 한국의 국보에 해당함)는 26곳이다.
정주 시내에서 1시간 거리에 있는 숭산(嵩山)은 중국정부가 특별히 지정한전국 44개의 풍경명승구(風景名勝區) 가운데 한 곳으로천하제일의 명찰이라는 소림사(少林寺)를 바로 산 아래 품고 있다.
또 숭산 자락에는 중국 최초의 천문대라고 할 수 있는주공측경대(周公测景台), 원대(元代)의 관성대(观星台),송대(宋代)의 사대(四大) 서원 가운데 하나인 숭양서원(嵩阳书院)그리고 현존하는 최대의 도교 건축군인 중악묘(中岳庙)등이 있다.
또 중국인의 인문시조(人文始祖)라는 황제(黄帝),열자(列子), 자산(子产), 한비자(韓非子), 두보(杜甫), 백거이(白居易) 등이 모두 정주가 배출한 유명한 인물들이다
전시된 유물들 가운데 농기구, 도검류들은
예나 지금이나 별 차이가 없을 정도로
정교하게 만들어졌음을 발견할 수 있다.
또 갑골문을 읽어보면 자자손손
부귀영화를 누리고자
기원한 내용들이 많다. 사람들의 욕망은
수천 년이 흘렀어도 변한 게 별로 없는 것이다.
한국의 제주 박물관이나 유럽의 박물관들과 비교 했을 때
별로 좋거나 꽉 찬 느낌은 들지 않았다,
이곳 중국의 역사를 알리기 위한 장소로 입장권을 무료로 하면서까지
이곳을 관광시키는 이유는
중국의 유구한 역사를 알리려는 의도 같음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자연 경치의 아름다움에 대한 중국의 멋을 인정하지만
이렇게 억지로 만들어낸 지금의 중국 박물관은
뭔지 모르게 어설픔도 있었다,
안내자는 이곳을 관광시키면서 박물관의 규모를 크게 말했지만
내가 본 유럽의 유명 박물관이
더 크고 역사적 유적이 더 많았다
80이 되신 부모님과 같이 여행은
제법 남들보다 많이 했다고 생각이 든다,
90년도 말에 브루나이를 아버지, 어머니와 같이 했던 기억이 난다,
남들은 왜 오지를 같이 다니느냐고 말을 하지만
다 사정이 있었다,
아버지 역시 세계 어디를 안 다녀본 적이 없는 분이셨고
좀 좋은 곳으로 모시고 싶지만,
자신이 젊었을 때 이미 가본 여행지는 싫다고 한다,
그건 나 역시 마찬가지다,
역시 여행은 젊었을 때 다녀야 한다고 아버지는
늘, 내게 말을 한다,
지금 80이 되신 아버지는 다니고 싶어도
다닐 수 없는 몸이란 것은 당신이 더 잘 알고 있다,
우리 집엔 삼 남매가 있는데 장남인 내가 아버지를 가장 많이 닮았다.
그래서 그런지 카메라를 둘러매고 시간이 되는 한, 능력이 되는 한,
사진여행을 떠나는 것이 좋다,
지금 아버지의 유일한 취미는
사진을 찍으로 다니시는 것이다,
여행 중에 단 한 번도 내가 하는 비즈니스에 대한
걱정을 해본 적도 없다,
여행을 하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싫은 사람, 좋은 사람, 미련과 분노와 시기와 질투와 종교와
돈과 명예와 내 위치 등
모든 것을 순간에 버려버린다,
여행지에 들어가면 그 여행지의 사람으로 변화하는
나 자신에 많이 놀란다,
작년 40일 정도로 남미 4개국을 완전 배낭만 메고
일주를 해 본 적이 있다,
편한 여행을 선호하지만 일생에 한 번 배낭을 메고
말과 문화가 다른 오지의 여행에서
모르고 있었던 나만의 자존심과
내가 살아 있다는 희열을 느꼈는데
그 여행처럼 진정한 감동을 느낀 적은 없다,
아버지의 꿈이 바로 배낭을 메고 세계를
돌아다녀 보는 것이었다고 한다,
아버지는 대우를 받으면서 여행을 했던 분이며 여행지에 가서도
시원스럽게 돌아다니지를 못한,,, 꼭 근처에 누군가에 의해
수동적인 여행만 하신 분이다,
배낭여행을 하면서 자유스런 여행을 하고 싶어 하는
나와 아버지는 이번 여행에서 많은 고민을 했었다,
아버지 그냥 우리 둘만 갑시다,,,, 그래, 그렇게 하자,,,,
그랬다가 어머니와 친구분들의 생각을 했고,
그러면서 주변의 아버지 친구분들과 함께하는
여행이 되고 말았다,
인천 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하남성 정주에 도착한
시간은 정주 시간으로 오전 9시 50분
조선족 출신의 27살 먹은 청년이 우리의 가이드로 마중 나와 있었다,
우리의 인원은 총 8명이었다
아버지 친구분들과의 함께한 여행이었는데 그중에
나보다 어린 남자분이 하나 있었고 나이가 37살이라 했다
그리고 나머지 사람들은 전부70, 80대의 어르신 분들이었다하남성은
밀 농사 위주의 농업 도시라 한다,
정주는 정씨 성의 탄생 도시이기도 하며 삼국지에 나오는
조조의 땅이라고 했다,
한국인은 약 600명이 살고 있고 한국 식당은
큰 것이 한 개가 있다고 한다,
하남성 정주는 복잡하고 무질서했다
가끔 차들이 가는 방향인데 거꾸로 오는 차량도 있었다
무엇보다 고장난 차들도 많이 보였다
결국, 우리가 타고 가던 자동차도 고장이 나고 말았다,
시간이 오후 2시경이었고
점심 후 바로 일어난 사건이었다,
가이드는 우릴 택시에 태우고 호텔로 데리고 들어갔는데
그날은 그것으로 관광이 끝났다,
나이 드신 어른들의 항의가 무섭게 가이드를 향했는데
가이드는 이게 중국입니다,
어찌할 수가 없어요, 하고 말아버리고 호텔을 빠져나가 버렸다,
어이없고 가이드를 잘못 만났구나,
운이 없었다. 생각하기로 했다
비행기를 타고 중국까지 온 우리 일행이 이처럼 별로 좋지도 않은 호텔에
가이드도 없이 무작정 누워 있을 수는 없었다.
내가 어르신들을 모시고 근처의 재래시장을 가보기로 했다,
이상하게 영어 한마디도 통하지 않은 중국이다
하지만 만약을 위해 호텔 명함을 뭉턱이로
집어들고 용기 있게 근처의 재래시장을 돌아다녔다,
말이 안 통했지만 길거리에 있는 양 꼬치 고기도
사서 먹었고 맥주도 마시면서
나름대로 가이드를 안주 삼아 첫날은 그렇게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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