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리비안 여행 이야기/자메이카

자메이카 여행 킹스턴의 밥 말리 박물관

김 항덕 2020. 7. 4. 07:11

밥 말리 박물관은 

킹스턴 호프 로드에 위치해 있다

 

 그가 살던 집과 녹음실이 그대로 

보전되어 있는 곳으로

박물관을 둘러보다 보면 음악가로서의 

그의 삶을 엿볼 수 있다. 

 

 밥 말리의 박물관은 

총격에서 목숨을 건졌던 방을 비롯해 

1970년 이후 7,500만 장의 

앨범 판매량을 올리며 얻은 영광의 순간들이

 사진과 앨범으로 고스란히 간직되어 있기도 하다,

 

자메이카의 상징이 된 밥 말리는 

레게 머리와 그의 노랫말이 유명하며

그의 노랫말은 

자신의 권리를 위해 일어나 

싸우라는 메시지를 전한다고 한다 

 

밥 말리가 태어났던 때는 자메이카는 

영국이 지배하고 있던 시절이었는데

 중년의 영국인 아버지와 10대인 흑인 어머니 사이에서

 1945년도에 태어났다, 

 

자메이카의 토속음악의 영향을 받으면서

 자란 밥 말리는 

16세때 가수로서 정식으로 활동을 시작한다, 

 

1962년 번째 음반인 "Judge Not"을 발표했으며

 1974년 레게의 클래식이 돼버린 "No Woman, No Cry"와

 "Lively Up Yourself"가 수록된 아주 뛰어난 명반, 

"Natty Dread"를 발표했다.

 

 1974년 당시 밥 말리 곡 중의 하나인 "I Shot the Sheriff"는

 팝 싱글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그는 평소에 축구를 무척 즐겨 했는데 

경기중에 그는 발에 상처를 입었고,

 치료를 받는 과정에서 

그의 몸에 있던 암세포를 발견했다 

 

건강상태가 좋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1978년에 뉴욕 매디슨 스퀘어 가든을 비롯한 광범위한 

지역으로 음악 투어에 나선다, 

 

뉴욕공연은 레게 역사상 가장 힘 있는

 라이브공연으로 기록되었다. 

 

같은 해 자메이카 킹스턴에서

 평화를 위한 콘서트와 보스턴에서 

흑인 자유 투사를 위한 자선공연을 가졌다.

 

 그러나 무리한 투어 일정은 

그의 건강에 엄청난 악영향을 주었다. 

1980년 다시 투어에 나선 그는

 뉴욕의 센트럴 파크를 조깅하다가 쓰러졌다. 

 

암은 그의 뇌와 폐 그리고 심장에까지

 퍼져 있었고 8달 후 사망했다.

 

 

 

박물관을 갔을 때는 

오전 10시경이었고 입장료는 20불이었다, 

 

 이른 시간이었지만 많은 사람이 이미 구경을 하고 있었는데

 개인적으로는 박물관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고

 10명 이상 단체관광으로만 입장이 가능했다, 

 

조금 기다리면 나같이 혼자 오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

 바로 10명이 채워졌고

 가이드와 함께 입장 할 수 있었다, 

 

약 20분 정도는 

박물관 안에 마련된 자그마한 극장에서 

생전의 밥 말리 공연도 불 수 있었는데..

 레게음악과 밥 말리의 전정기때를 

알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었다,

 

아쉽게도 박물관 안에서는 사진을 찍을 수 없었다, 

밖에서만 사진 찍는 것을 허용했는데 

그나마 다행이었다.,

 

레게 음악을 하는 사람들에겐 

이곳이 최고의 성지라 한다, 

 

자메이카 킹스턴엔 레게음악에 빠진 일본 사람들이 

많이 온다고 한다, 

이곳에 오는 일본인 중엔 

레게의 성지인 이곳 밥 말리 박물관에 들러 

그의 동상을 껴안고 

수 시간씩 눈물도 흘리는 사람도 있다고 하니

 일본인들의 극성맞은 열정도 대단하지만

그들의 우상이 된 

레게 황제인 밥 말리는

 더욱 돋보이고 위대한 인물로 보인다,

 많은 사람들은 

이곳을 방문후엔

그의 음악세계를 더욱 알고 싶어한다고 한다,

 

2001년 영국의 'BBC News"에서

 7,700명을 상대로 한 

역대 최고의 가수를 뽑는 투표에서

 총 투표서의 32.65%를 얻는

 밥 딜런(Bob Dylan)이 1 위를 차지했고 

존 레논(John Lennon)이 18.83% 2위, 

13.64%를 얻는 밥 말리(Bob Marley)가 3위를 차지했다,

 4위는 폴 매카트니 5위 폴 사이몬,

 등이 수위를 차지했었다.,

 

1974년도 자메이카는 

대낮에도 사람이 걸어 다닐수 없을 정도로 

무법천지의 나라였고 대 혼란의 시기였다. 

정당들은 나라를 위한다는 명목 아래

 정치적 교전 상태가 계속 되었고, 

킹스턴 시네 많은 

지역에선 연일 크고 작은 폭력 사건들이 터졌다. 

 

이럴때  자메이카 오디언가에 있는

 라디오 방송 스튜디오에선 매우 급박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야구 방망이까지 동원한 

한 무리의 사내들이 

디제이를 둘러싼 채, 

위협적인 분위기를 조성 중이었고, 

그중 한 명은 바로 밥 말리(Bob Marley)였다.

 

 그는 디제이에게 새로 녹음한 "Road Block"이란 곡을 

틀지 않으면, 죽일 수도 있다고

 협박하던 참이었다. 

 

당시 말리의 밴드 웨일러스(The Wailers)는

 자메이카에서 가장 많은 사랑을 받고 있었음에도

 정작 자메이카의 방송국들은 그들의 음악을 틀지 않았는데, 

이에 분노를 느낀 말리와 풋볼 선수 출신이자

 투어 매니저인 앨런 "스킬" 콜(Allan “Skill” Cole)을 

비롯한 동료들이 직접 행동을 취한 것이었다.

 

 결국, "Road Block"은 방송을 탔고, 

그해 여름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이 살벌하고도 비도덕적인 일화는 밥 말리가 

자신의 목표와 신념을 관철시키기 위해서라면

, 얼마나 저돌적인 행동도 서슴지 않던

 인물이었는지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예다.

 

위의 일화처럼 당시의 

밥 말리를 중심으로 많은 

얘깃거리가 있는데 

시대적 상황이 어쩌면 밥 말리를 만들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 본다,

 

 

밥 말리 박물관의 실내에서는 

사진을 찍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지만,

 밖에서는 자유자재로 촬영을 할 수 있었다, 

 

공간이 있을 만한 곳이면 밥 말리에 관한 

조형물이 여기저기 설치되어 있었고

 벽에는 온통 그를 그려 넣은 그림으로

 도배가 되어 있었다, 

 

어느 곳에서는 낙서 비슷하게

 평소 그가 즐겨 부르는

 노래 제목과 노랫말 가사증

 일부도 그려져 있었다, 

 

 

구경 시간은 약 2시간 정도 걸린다, 

2시간의 박물관 실내 투어가 끝나고 밖으로 나오니 

아까보다 더 많은 사람이

 이곳에 들어와 투어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마도 이곳 킹스턴을 찾는 사람이면 

당연히 들려야 할 이곳이기에 이곳에서

 가장 많은 외국인을 본 것 같았다,

 

 

위의 사진에서처럼 

벽면엔 "no woman no cry" 이란 

밥 말리의 최고 히트곡 중의 하나인 

음악 제목이 그림과 함께 쓰여 있는 곳이 눈에 띄었고  

 밖의 스피커에도 이 음악이 자주 흘러나왔다, 

 

이곳 밥 말리 박물관을 한바끼 둘러보고 

나니 더욱 이 음악의 의미와

 멜로디가 떠나지 않는다, 

나 역시 이 음악이 밥 말리의 음악이기도 하지만

자메이카인의 권리와 

자존심의 음악으로 생각하고 싶었다,

 

그리고 이 음악이 이곳을 떠나고 

한참이 지난 지금도  나에겐 잊힐 수 없는 의미의 

 음악의 하나로 자리 잡고 말았

 

 

어느덧 나도 모르게 

밥 말리의 음악을 씨디 기계에 넣고 들어 보게 되는데

들어 보면 볼수록 정감과 자메이카의 

가난에서 허덕이는 모습들이 생각이 난다,

 

자동차를 타고 가면서 주로 듣는 음악이 되었지만,

 요즘 평상시 사무실에서도

유 튜브의 밥 말리 공연을 자주 클릭하게 대었다,

 

지금도 내 컴퓨터에는 밥 말리의 음악이 

유 튜브를 통해 흘러나오는데 

들어볼수록 이상하리만큼 

그의 음악에 빠져들어 가게 된다,

 

아마도 밥 말리의 음악과 멜로디를 통해 

새로운 장르의 음악을 알게 되는

 기쁨을 음미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왠지 전에는 전혀 몰랐던 또 다른 음악의.... 

창조된 음악을 이 밥 말리의 음악이 전해주는 듯하다,

 

밥 말리의 인생을 떠올리면

 음악과 그의 종교인 

라스타파리즘을 빼놓을 수가 없다,

 

1930년도에 자메이카와 도미니카 섬 지역에서 생겨나기 시작한 

이 운동은 원래 흑인들은 유대인이었지만 

벌을 받아 자금 백인들의 지배를 받고 있는 중이며

 언젠가는 다시 정상으로

 돌아갈 것을 믿는다는 것이다,

 

라스타파리아는 고대 솔로몬과 

시바여왕의 자손 중 한 명의 이름이다,

개인의 행복보다는 엄격한 

윤리에 비중을 두고 있다,

 

라스타파리아를 믿는 남자는

 머리를 길게 땋아 내려야 하며 

초록색 팔 강 색 노란색 검은색으로 물들인

 모자를 쓰며 마리화나를 피워대는 것에도

 종교적 의미를 부여한다,,

 

밥 말리의 레게 음악은 가사와 연주를 통해 

라스타파리즘의 이상을 세상에 전달하는데 

중요한 역화를 했고

어느덧 

그 중심에는 밥 말리가 있게 되었다,

 

라스타파리즘은 1982년 영국에서

 정식 종교로 인정받았다,

 

밥 말리의 트레이드 마크인 

일명 레게 파마머리는 

그의 종교에서 영향을 받았고

 자메이카와 전 세계 젊은 레게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지금 까지 번져 전해지고 있다,

 

지금 나는 다시금 그의 음악을 음미하며

 맛있게 음악을 들고 있다,

 

그리고 이 블로그 페이지에 그의 음악

"no woman no cry" 이란 

밥 말리의 최고 히트곡 중의 하나를 

집어 넣어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