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 이야기/수리남

수리남의 수도 파라마리보 구경하기

김 항덕 2020. 7. 5. 13:41

수리남(Republiek Suriname)은 

남아메리카에 있는 독립국이다, 

 

남쪽으로는 브라질과 국경을 맞대고 있으며

 동쪽으로는 프랑스령 기아나, 

서쪽으로는 가이나와 맞닿아있다, 

 

1975년 11월 25일에 네덜란드로부터 독립하였다 

수도는 파라마리보다 

 

전 국토의 80%가 밀림지역이며 

금이나 보크사이트 같은 광산자원이 풍부하다. 

 

 기후는 열대 기후이며 

일 년 내내 온도 차가 거의 나지 않아서

 사실상 우기와 건기로 나뉜다 

 

주민은 인도계가 37%, 크리올(백인과 흑인의 혼혈)이 31%,

 인도네시아계가 15%, 

아프리카계가 10%, 나머지는 

선주민이나 화교 등이다. 

 

주 언어는 공용어가 네덜란드어이지만

 영어, 에스파냐어, 포르투갈어도 사용된다.

 

수리남 파라마리보 국제공항에

 도착을 한 시간은 저녁 (새벽)1시가 넘어서였다, 

트리니다토바고에서

 출발해야 할 저녁 8시 비행기가 2시간 정도 연착이 되었고

새벽 1시라는  너무 늦은 시간에 도착하는 것이라

 처음가는 수리남 공항에 대한 불안감이 

내 모든 신경을 지배했던 것 같았다, 

 

그러나 다행히도 

어제 수리남에서 식당과 숙박을 하는 

한국분과 연락이 되어 

숙소는 정해져 있는 상태였다, 

그러나 그 정해진 곳이 

일반 호텔이 아니고 가정집 아파트 같은 거였기에

 이리 늦은 시간에 도착해서 

그곳에 가면 누군가 날 기다려주지 않으면 

숙소에 들어갈 수가 없었다, 

 

새벽 1시가 넘어 처음 가는 수리남이란 곳이

 치안이 별로 안 좋다는 소문을 

트리니다토바고에서 많이 들었기에

 그 불안은 비행기가 연착이 된다는 소식이 들려올때마다 

점점  불안감이 더 몰려왔다,

무엇보다 걱정이었던 것은 

수리남은 영어가 통하지 않는 나라였고

 네덜란드어를 쓰는 나라다,

 

수리남행 비행기가 연착되어

 이리 저리 왔다 갔다 공항 밖에서 어슬렁거리고 있을 때

 한국 사람을 한 명 만났는데 젊은 친구였다, 

일 관계로 수리남을 들어간다는 

그는 한국 무역회사가 파견한 사람이었고 

베네수엘라 사람 한명과 동행중이었다,

 

그 젊은 친구는 

 느긋해 보였는데 수리남에 도착하면

 마중나올 사람이 있기 때문이었다

 누군가 공항에서 마중 나올 사람이 있다는것이 

 그토록 부럽기는 여행 중에 처음 느끼는 것이었다, 

 처음 보는 사이에

 차를 태워달라고 부탁 할수도 없었다

 

비행기는 밤 11시가 넘어 탑승해서

 새벽 1시쯤  수리남에 도착했다, 

 

수리남에 도착한 모든 외국인은

 따로 비자를 받아야 한다고 직원 같은 사람이

 입국심사를 받기 위해 줄을 선 사람들에게 

전해주며 다녔다,

 

나를 포함 약 10여 명의 외국인들이

 일제히 줄에서 나와 비자를 받는 책상 쪽으로 걸어갔다, 

허연 종이에 

도장으로 비자를 찍어주었는데 비자 가격은 25불이었다, 

 

출발할 때 만났던 한국 젊은 친구는

 비자를 받아야 한다는 말을 못 알아들었는지 

출입국까지 가서야 

비자를 받아야 한다는 말을 듣고

 헐레벌떡 비자 받는 쪽으로 띠어왔다, 

결국 비자를 받기 위해

 맨 뒤쪽으로 줄을섯는데 

아마도 제일 늦게 출입도장을 받았을 것 같다,

 

수리남 입국 절차를 나중에 인터넷을

 통해 검색해 봤는데

한국 여권은 비자 없이 무 비자라는

 설명이 나왔는데

그 한국 젊은 친구는 왜 비자를 받아야 했는지는 모르겟다,

 

 

공항 밖으로 나오면서 

느낀 공항의 분위긴 아주 허술하고

 시골 냄새 같은 것이 났다, 

새벽이라 별로 사람이 없었던 공항은 

조금 초라해 보였고 작아 보였다,

 

새벽 1시라 그런지 내 앞으로 달라붙는

 잡상인들은 없었지만

 어떡해 그 예약된 숙소까지 갈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고 

숙소까지 도착 했을 때 

아파트 주인들이 과연  나를 기다려줄까,,,, 

하는 걱정된 마음에 많이 조급했다,, 

 

밖으로 나오니 다행이

 택시들이 많이 보였고 그중 맘씨 좋아 보이고

 영어도 조금 할 줄 안다는 

키가 크고 좀 마른 사람을 찍어

 내가 갈 숙소의 주소를 건네주었다, 

60불을 달라고 해서

 왜 이리 비싸냐고 하니 1시간을 가야 한다고 했다, 

내 숙소의 주소는

 수리남의 수도 파라마리보에 있는 한국인 식당인데 

그렇게 멀리 있냐고 물어보니

 약 70마일 정도가 떨어졌다고 한다, 

 

나는 그 택시 운전수를 믿어야 했고

 드디어 수리남 땅을 밟았다는

기쁨도 가질수 있엇다,

 

그렇게 오고 싶었던 나라, 

20년을 벼르고 별렀던 나라 수리남에 왔다.,

 

숙소에 도착한 시간은 

밤 1시가 한참 지나서였는데

 다행히 주인이 기다려주었고

 열쇠를 받았다, 한국 사람이었다,

 

택시를 타고 이곳 파라마리보까지 오는 거리는

 짧은 거리가 아니었다. 

주변의 환경을 이리저리 보고자 했지만, 

가로등 불빛 하나 없는 

이 긴 거리를 말도 잘 통하지 않는 사람과 단둘이서 가야 한다는 것도

 긴장된 여정이었다 

 

아무튼 무사히 도착한 숙소는 

이 나라의 전형적인 아파트 건물이었고

 2층에 자리 잡았다, 

 

아파트 아래에는 이곳에서

 30년을 식당을 했다는 

한국 사람이 운영하는 한식 전문 식당이 있었다,

 

아침이 되어 아래층 식당으로 내려가서

어제 기다려줘서 감사하다는 말로

 인사를 하면서 

또 다른 택시 하나를 소개받았다, 

 

젊은 친구가 하는 택시였는데 

하루 60불을 주고 이곳에서

 볼 수 있는 여러 곳을 가자고 했다, 

이렇게 해서 제일 먼저 

이 나라 다운타운을 구경할 수 있었다

 

 

 

이곳은 수리남의 수도이며 

가장 큰 도시인 파라마리보다, 

주로 네덜란드 식민지 시대에 

중심적으로 지어진 건물들이 대부분이며 

가끔가다 아주 드물게 보이는 

백인들은 거의 네덜란드 사람들이었다,

 

바다를 지키는 대포들이 외로워 보인다,

왠지 모르게 약간은 

초라한 국력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저 멀리 네덜란드 사람들이 80년도에 

지어주었다는 다리가 

그나마 볼거리 중에 하나였고

택시를 탈때마다 운전수들이 이 다리에 대해 자랑을 했다,

 

네덜란드 관광객들

 

파라마리보(Paramaribo)는 수리남의 수도이다. 

인구는 약 230,000명이고

 파라마리보는 1630년에 영국인에 의해서 건설되었다. 

 

1650년에 파라마리보는 

새로운 영국의 식민지 수도가 된다.

 그러나 1815년부터 수리남의 독립까지

 네덜란드가 지배하고 있었다. 

 

수리남은 영국에 의해 건설된 영국의 식민지였지만 

네달란드의 식민지였던 

미국의 뉴욕과 맞바꾸었다고 한다, 

이후 수리남은 네덜란드의 식민지가 되었고 

1975년 독립했다

 

대포가 있었던 공원을 둘러보고 

차를 타고

 좀 더 들어가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그리고 맞은편엔 바다가 보이고

 길거리엔 잡상인이 보였던 그 맞은편엔

 네덜란드 사람들이 지어 놓고 떠났던 

당시의 건물들이 이 나라의

 상징처럼 한곳에 모여있었다.,

이곳을 걸어 다니며 1시간 정도를 보냈다,

 

수리남 여행은 먼저 약간의 정보를 갖고 갈 필요가 있는데 

많은 부분이 일단 수리남을 가서는

 전문 가이드 없이는 찾아가기 힘든

 여행 코스가 있기 때문이다, 

 

수리남에서 가장 인기 있는 

여행 코스는 정글 투어 코스가 있는데

 3박 4일 코스부터 일주일. 10일간의 긴 코스가 있고

 비용도 200불부터 600불까지 다양한 비용이다, 

 

일반 로컬 여행사에 이틀 전에만 문의하면 

정글 투어를 갈 수가 있는데 

 나는 여행사에서 물어보기만 했고

 시간상 이 투어는 하지 못했다

 

 다운타운의 한복판에서 

 내가 좋아하는 걸어보기를 했다, 

그리고 이곳 수리남에서 

최고의 중심부라고 할만한 가장 사람들이 많이 있고

 현대식 건물도 제법 보이는 시장도 구경했다,

그리고 또 한 번 많이 놀라운 장면을 보았다.,

 

그것은,,, 이 나라 한복판에서

 자리 잡고 있는 

중국인들의 모습을 보고 말았다는 것이다,

 

한 건물이 유독 좋아 보였다, 

 겔레리아식으로 지어 놓은

 건물에 들어가면 시원한 에어컨이 있는 식당이 있을 거 같아 들어갔는데 

그곳에는 수십여 개의 가게들이 

즐비하게 늘어져 있던 곳이었다, 

 

옷을 비롯해 수많은 종류의 가게들이 있었는데

 그 가게들의 주인들이 

전부 중국 사람들이었다, 

 

식당에 들러 음식을 시키면서 

일부러 중국인 부부에게 말을 걸어봤는데 

영어는 물론 이 나라에서 쓰고 있는

 네덜란드 말도 전혀 하지 못하는 사람들 같았다, 

 

대강 이들이 온 곳은 중국 본토이며 

이 건물에서 장사 한 것은 

5달 정도 된다는 것만 어렵게 알아 들었다, 

이 건물은 3층 짜리였고  

지어진 시기는 3년밖에 되지 않았고 

그 3년 안에 이렇게 많은 중국인이 

이곳으로 이민 와서 살고 있었다, 

 

그리고 이들 중국인은

 느긋하게 이곳에서 살고 있는듯했다, 

조급해 보이지 않았고 여유 있는듯한

 미소를 이들에게서 보게 되었다, 

돈이 많아 이곳에서의 장사는 그냥 시간을 때우기 위해

 하는 것이란 느낌이 왔다, 

이들이 이곳에서 시간을 보내고 조금 있다가 

전부 미국으로 오는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밖으로 나와 군데군데 제법 큰 가게들을 들러보니 

이 밖의 가게들도 

전부 중국사람들의 가게들이었다,, 

중국인들이 이곳에 와서 살면서

 이 나라 경제에 보탬이 되는 것일까.. 

한 명당 이민을 신청하면 

얼마나 받을 수 있을까.. 많이 궁금했다,

 

중국인들이 많은 것에 대한 놀라움은

 다운타운에서만 느낀 것이 아니었다, 

오후가 찾아왔고,, 이곳의 어느 곳에서

 시원하게 맥주 한잔 하고 싶어 

택시를 타고 사람이 

좀 많이 붐비는 곳으로 가자고 했다, 

 

택시가 내려준 곳 바로 맞은편에는

 카지노가 있었다, 

일단 카지노 구경을 하기 위해 들어갔는데 

안에서 놀음을 하는 사람들도

 전부 중국 사람들이었다, 

카지노 딜러부터 왜추레스까지 전부다가

 중국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카지노 한쪽에는 부폐식으로 

음식이 깔려있었는데 이 부페는

 7시 이후부터는 카지노에 놀러 온 사람에 한해 무료였다, 

 

이후 수리남을 떠나는 날까지 밤이면 

이 카지노에 들려 

이곳의 공짜 부패 음식으로 저녁을 해결했다, 

 

그리고 밖으로 나오면 바로 앞쪽엔 

이 나라 최고의 술을 파는 

칵테일 카페들이 늘어져 있었다, 

나는 칵테일의 이름도 제법 알고 있는데

 이들의 칵테일은 전혀 모르는, 

자기들만의 칵테일을 즐기고 잇는 것이 특이했고

 맛도 좋았다.,

 

 

수리남 공항으로 입국할 때 찍어준 입국비자,

 25불을 내야 했다,

 

 사진 아래는 수리남에서 쓰던 돈, 

수리남에 늦은 시간에 도착했는데도

 환전하는 곳엔 불이 켜져 있었다, 

300불을 바꿔서 사용하는데도 

많은 지폐가 남아 집으로 가져왔다.

 

 

 

한국 식당에서 나에게 소개해준 택시 운전사는 

아직 많이 어려 보이는 젊은이였는데 

결혼을 해서 부인도 있다고 했다, 

 

사실 그의 자동차는 겉보기엔 좋아 보였지만 

막상 차 안에는 많이 삭아 있었는데 

일단 창문이 마음대로 올라가지 

내려가지도 않았으며 의자의 폭이 너무 좁았지만, 

뒤로 밀수도 없었던 자동차였다, 

무엇보다 이 자동차는 정식으로 

택시 영업하는 자동차가 아닌듯했다, 

자기 개인 자동차를 가지고 와서

 하루 용돈을 벌어볼 참인 것 같아 보였다, 

나에겐 이런 것이 아무런 상관이 없었지만 

조금 지나서 이 운전사인 젊은 친구가 먼저 자수를 했다, 

 

자기가 오늘 쉬는 날인데 약간의 돈이 필요해

 친구 대신 나온 거라고,,,, 

이런 차를 너무나 많이 타고 다녔기에

 난 대수롭지 않고 오히려 이 나라에서는 당연 했지만, 

이 젊은 친구는 많이 미안해했다, 

 

하루 60불을 지급하는 조건으로 오후 5시까지

 이 차를 이용하기로 약속을 했기에 

내가 원하는 곳으로 어디든 갈 수가 있었다, 

그렇지만 수리남은 가고자 할 때 

마음대로 갈 곳이 없는 나라인듯 했다,, 

인구가 겨우 이십만 명이 넘는 이 작은 나라에서

 나를 태우고 어디를 가고 싶어 했던 이 젊은 기사도

 처음엔 즐겁고 

자신 있게 다운타운의 건물과 

공원의 건축물들을 보여주고 설명을 해주고 했지만,

 그 이후엔 어디를 가야 할지 많이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준비가 덜 된 가이드 겸 운전사였다

그렇지만 그걸 떠나서

 진짜로 이 나라에서 어디를 구경해야 할지 

많은 고민을 해도 갈곳이 없었다

다운타운은 차로 10분이면 

동에서 서로 가로 지을수 있을정도의 

크기였다,

이 작은 도시를 난 금방 이해했는데

오히려 이 아마추어 택시 운전사는 앞으로

 남은 6시간을 어떡해,, 

어떤 곳을 구경 시켜줘야 할까 

고민을 크게 하는것 같았다

 

돈까지 받았는데,,, 책임지고 구경을 시켜줘야 하는

 이 상태를 눈을 깜박이며 

 걱정을 하고 있었다

 

자기 나라를 찾아온 나를 

어디를 구경시켜줘야 할지

 많은 고민을 할수바께  없었을것이다,

 

 이 친구는 오히려 다른 나라는 어떤 볼 것이 있냐고

 물어보기를 여러 번 했으며 

사진과 인터넷에서 보아온 다른 나라의 풍경에 대해

 이곳 저곳을 가 봤냐고 많이 물어봤다,

 

이 친구는 자기도 

꼭 한번 그곳을 향해 여행해 보고 싶어 했다 

그리고 자기 나라를 찾아온 여행객들이

 이 나라에서 진짜 멋지고 

행복한 여행을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 시간, 나에게 더 많은곳을 구경시켜 주고 싶지만 

어쩔수 없이 다운타운밖에 구경을 시켜주지 못했던

 그  착했던 젊은 친구가 많이 생각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