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민 이야기

이민은 잔인하다는 거였다

김 항덕 2020. 8. 10. 02:37

파라과이 시대에서 가장 인상에 남는 시기는 친구 없이 외롭게 지내던 그 1년의 세월이었는데

그 1년이란 시간은 이민시기에 대한 거의 모든 것을 이해했다고 말해도 좋을 정도로

많은 것을 경험했는데 결론은 이민은 잔인하다는 거였다,,

한국의 친구들에게서 거의 일주일에 한두 번씩 편지가 날아들어 왔는데

동네 친구들부터 성당의 친구들 그리고 이곳에 오기 바로 전까지

가장 많이 어울렸던 대학 때 친구들로 부터였다,

그러고 보니 여러 군데서 많은 친구가 나에게 있었다,

문제는 이들의 편지 내용이었는데 거의 전부가 군대 가기 전에 신나게 놀고 있다는 내용이었고

당시 내가 떠나오기 바로 전 같이 추억을 쌓아갔었고 그 추억의 후기에 대한 내용이었다,

그것들은 23살의 신나게 놀아야 할 나의 기를 꺾는 내용이었다,,

힘을 내고 고통을 참으면 앞으로 더 좋아질 것이며

성공해서 만나자는 건설적인 말은 전혀 없었던 내용이었다,,, 그렇게, 당시 나도 그랬지만

내 친구들 역시 철이 없었다,,

나에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던 악마 같은 친구들이었다,

그 잔인한 1년의 파라과이 생활은 그렇게 눈물과 친구들에 대한 그리움과 외로움으로 지나가고 있었다,

그 일년동안 나는 벤데라는 일을 하면서 지냈다

차에다 물건 싣고

멀기로는 3시간까지 차로 가서 옷을 팔기 시작했다,

하지만 적게는 30분 근 쳐 떨어진 곳에도 한다

난 주로 멀리 가는 코스를 잡고 있었는데. 아침 8시쯤 운전을 하고 나가면 12시 되기 전에 이상한

시골 마을에 도착해서 조용한 시골 마을을 클랙슨을 울리며 돌아다녔다,

그러면 우선 동네 강아지들이 내 차를 따라다니며 짖기 시작했고

꼬맹이들이 몰려들었으며 그다음엔 동네 아낙네들이 다가와 어떤 물건들이 있는지 물어보며 옷을 뒤적이기 시작한다,

그런데, 이러면서

많은 충격적인 장면들을 보기도 했다,

한번은 손님 중에 한 명이 이 동네에 꼬레아노가 사는 곳이 있다고 해서 간 적이 있는데.

진짜 한국인 여자분이었다, 오히려 그 한국 여자가 나를 피하는 듯 느낌을 받았는데

당시에 왜 이런 곳에 사는가? 등등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생활이 너무나 비참하다는 것을 느낌으로 알 수 있었다,

여자로서 한국인으로서 정말 비참하게 사는 그 한국 아줌마의 피곤해 보이는 얼굴은 아직도 잊지를 못 한다,

또 한 번은 애들 얼굴이 동양인과 같아 물어본 적이 있다. 아빠가 누구야??..

아빠는 바로 코리아도 라고 말했고,, 종종 그런 종류의 얼굴들을 그 후에도 많이 보기도 했다

벤데를 하면서 많은 파라과이 현지인들을 만났는데 그중에서 친구로 지내기도 했고 사기를 당하기도 했다

말을 배우기 시작했으며 남미문화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난 본격적인 이민 생활을 하기 시작했다

파라과이의 노을은 참 이뻤다

난 지금 지도를 보면 70여 개국을 돌아다녔고 남들이 말하는 세계여행을 했다,

그렇지만 그 시절,, 23살 때 내가 알고 있던 사람이 전혀 없었던 남미 파라과이에서

벤데를 한답시고 돌아 다녔을 때 보았던 그 노을을 잊지 못한다,

내 책상 앞에는 캐논 카메라와 훌륭한 망원 렌즈도 있지만,,,

그 어떤 카메라로 찍은 것 보다 더 아름다웠다,

내 가슴속에 담겨 있는 이 파라과이 시골 마을에서 봤던 그 아름다운 노을은 영원히 내 가슴에 남아 있을것이다,,

지금 그때의 그 노을이 왜 이렇게 보고 싶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