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민 이야기

헤이 꼬레아! 라고 불리고 있었다,

김 항덕 2020. 8. 12. 07:51

파라과이가 그리 나쁜 것만이 있던 것이 아니었다,

22살의 어린 청년의 눈으로 본 이곳의 아가씨들은 눈부시게 아름다웠다는 생각이 들었다,

파란색 눈과 밤색의 눈이 많았고 피부는 백인형의 얼굴에 검은 머릿결이었지만

한국에서 갓 와서 본 당시의 눈엔 정말 외국의 여인들을 보는 것이었다,

나중에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를 밀입국을 해 여행도 하면서 파라과이 여인들과 비교를 했지만

특히 파라과이 여인들은 이쁘고 순박함까지 있었다

이민 온 한국 사람들 중에는 만만치 않게 파라과이 여인들과 결혼을 해서 사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만큼 파라과이 여인들은 순박했고 예뻤으며 부지런했다,

동양사람,, 특히 한국 사람들은 유난히 그곳 파라과이에서 그곳 현지인들에게 눈에 띄고 있었는데

당시 1983년도의 파라과이는 엄청난 이민자들이 몰려들었다,

특히 아시아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는데. 한국 사람이 80년 초에 대략 8천 명이었던 것이

내가 그곳을 떠날 즈음인 1991년도에 3만 명이 넘었다고 들었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은 한국 사람들의 이민 실태지만 일본사람 중국 사람 그리고 동남아 사람들

특히 베트남 사람들의 이민이 갑자기 불기 시작 할 때부터는

엄청난 숫자의 아시아인들이 여기저기 보이기 시작했다,

내가 그 나라 사람이라도 어떤 조처를 하지 않으면 이곳 파라과이는 아시아 이민으로 넘쳐 나는

이상한 나라로 변할 것 같은 느낌도 많이 들었다,

그런 느낌은 당시에 나만 들었던 것이 아니라 주변의 한국사람들 역시 그것을 느끼고 있었다

아시아 이민자들의 급증으로 기존의 이민자들은 많이 좋지 않은 부작용들이 곳곳에서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중 가장 큰 첫째의 고민은 이민자들끼리의 경쟁이다,

특히 중국 이민자들은 그들의 나라에서 가지고 온 많은 싸구려 물건들을

파라과이 시장에 풀기 시작 했을 때 기존의 같은 아이템으로 장사하는 한국 사람들은

분명 많은 타격을 받았다,

두 번째는 너무나 무작위로 들어온 중국의 이민자들과 동남아 이민자들의 매너없는 행동 때문에

점점 시간이 갈수록 한국인들을 포함 모든 동양인들을 같이 도매급으로 몰고 가게되었다,

파라과이는 당시만 해도 들어 오기만 하면 이민 영주권을 발급해 주는 나라였기에

제3국을 향한 또 다른 이민의 출발 처로 생각해서 파라과이 이민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마구잡이로 들어오는 동남아 그리고 중국 사람들의 문제는 점점 그곳에 발을 묻고 사는

많은 한국 사람들에게 그곳을 떠나 또 다른 나라로 제2의 이민을 생각하게 했다,

파라과이에서 많은 아시아 사람들이 그들 나름대로 먹고살기 바빠할 때

그곳 현지 파라과이인들은 모든 동양 사람들을 향해 헤이 꼬레아!! 라고 불러되곤 했다,,

꼬레아 라는 말은 (COREA) 스페인어로 한국 사람,, 이란 말이다,,

하지만 꼬레아!!하는 말이 가면 갈수록 아시아 인을 경멸하고 조롱하는 말로 들리기 시작한다,

당시 파라과이는 실제로 겉으로만 봐도 한국의 경쟁 상대가 아니었다,

그러나 그들에겐 국가의 경제력이 문제가 아니고 각각 개인 이민자들에 대한

경멸의 단어가 바로 헤이 꼬레아!! 라는 단어로 굳어지기 시작한다,

중국 사람들에게는 치노!! 라는 말이 있다

그곳 파라과이에서는 중국 사람 베트남사람 할 것 없이 동양 사람들만 보면 꼬레아노 !! 라는 말을 하곤 했다

미국에 들어온 후 여행으로 남미 여러 국가를 가 본 적이 있는데

어디를 가나 헤이 치노!! 라는 표현으로 동양인을 불러댔다,,

남미 다른 어느 국가를 가도 헤이 치노! 라는 말을 듣지만 헤이 꼬레아라는 말은 별로 듣지 못했는데.

이곳,, 1983년도 파라과이는 당시 헤이 꼬레아로 모든 동양인을 불러대곤 했다

그만큼 한국인은 당시 이 나라 이민문화의 중심이 아니었나 생각이 든다,

당시 파라과이 중심에 보난자( BONANZA)라는 이곳 최고의 옷 시장이 있었는데

그곳 안에서 장사하는 80%가 한국 사람 꼬레아 노였다,

그곳에 들어가면 가게 하나당 그곳 파라과이 종업원을 2~3명 많게는 10명까지 두고 가게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미국의 스왓밑 같은 분위기였다,

보난자( BONANZA)근처에 가면 한국 소식과 음식 가게들도 있었으며 시장 근처에는

아주 커다란 한국 커뮤니티도 자연스레 형성되어 있었다,

한인 비디오 가게에서 비디오를 빌려 보고 한국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곳,당구장 중국집도 있었고 미장원 이발소도 있엇고 한인이 하는 병원과 약방도 있엇다,

그 보난자 주변은 그렇게 한인 사람들을 중심으로 한인 타운이 형성되어 있었다,

내가 알기로는 다른 나라 이민자들은 그런 거리를 형성해서 살고 있지 않았다

당연히 그곳 현지인들로부터 주목을 받고 눈에 가장 많이 튀게 보이는 사람들이 한국 사람 꼬레아노 였다,

그리고 그 동양 사람들의 대표 단어가 만들어졌는데 모든 동양 이민자들은

그곳 파라과이 아슌시온에가면 헤이 꼬레아 ! 라고 불리고 있었다,.,

헤이 꼬레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