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민 이야기

아침은 파라과이 점심은 브라질 저녁은 아르헨티나

김 항덕 2020. 8. 14. 08:46

파라과이는 당시 성냥 하나 만들어 내지 못한 나라였다,

생필품 거의 전부를 이웃 나라에서 아니면 다른 이민자들에 의해

밀수로 들여오곤 했는데 그것이 당시 파라과이의 시장경제였다,

그래서 그런지 당연했던 것은 이런 가난한 나라에 전 세계적으로 유명하다는 자동차는 거의 다 있었다,

특히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서 넘어온 유명 자동차가 자갈로 만들어진 이 거리를 달리는 것이

조금 이상하게 느낄 정도로 발란스가 안 맞는다고 생각을 하곤 했다,,

나중에 안 것은 수많은 자동차를 훔쳐서 이 나라에 갖고만 들어오면 번호판이 너무 싶게 나온다고 한다,

아마도 세금을 내고 장사를 하라 했으면 파라과이에 있을 사람은 거의 없었을 거다,

내 나이 22살 땐 뭐 이런 나라가 있어,, 하는 푸념의 말들을 많이 했으나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남미 파라과이를 이해 할 수 있게 됐다,

이웃의 강대국인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의 틈에 끼인 이 나라는 뉴스거리도 역시 이웃의 뉴스를 방영하는 이상한 나라였다,

정치 경제 등 모든 축이 이웃 나라의 것들과 같이 돌아가야 하는 특수한 위치의 가난한 나라였다.

수많은 한인 이민자들은 어떻게 해서라도 파라과이는 살아남아야 했다,

보잘것없는 사막과 정글 숲으로 감싸아진 이 보잘것없는 땅덩어리 안에 먹고살 것을 찾아야 했고

치열하게 다른 이주민들과도 경쟁해야 했다,

파라과이 수도 아순시온에서 동쪽으로 약 400킬로를 달리면 제2의 도시가 나온다,

지금은 그 도시 이름이 씨우다데 에스떼 (ciuda de este ) 동쪽의 도시 라는 이름을 가졌지만

그 당시에 그 도시 이름은 스트로네스(strones) 라는 이름을 가졌었다,

이상 했던 것은 그 스트로네스 라는 도시 이름은 그 당시 파라과이 대통령 이름과 같았다는 것이다

좀 이상한 이름이었다 스트로네스 라는 단어 자체가 스페인어가 아니였다

아무튼 현재 살아 있는 대통령 이름을 따서 이름은 지었다는 것만 바도 당시 그 나라가 얼마나 독재 국가였는가를 알수 있었다,

그리고 대통령은 독일 사람이었다,

다음에 그 대통령에 대해 자세히 써야 할 것 같지만 당시 그 도시 스트로네스 는 이구아수 폭포를 마주하면서

브라질 아르헨티나와 국경을 마주하고 있었다,

그곳을 성당의 친구들과 여러번 갔엇는데 당시 그곳에서 사귀었던 교포 친구들과

아침엔 파라과이 점심엔 브라질 저녁은 아르헨티나에서 먹으면서 놀러 다녔던 기억이 난다,

차를 타고 브라질 국경을 넘을 때 차 안에서 우리가 했던 대화들은,,

한국의 친구들이 점심을 먹으러 브라질로 가고 저녁엔 아르헨티나 고기를 먹으로

다시 또 다른 나라 국경을 넘는다면 믿을 수 있을까 ? 라는 대화를 했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파라과이에서 가장 당시 경기가 좋았던 곳도 이곳 스트로네스였다,

그곳은 파라과이 아르헨티나 브라질 3국의 국경이 붙어있는 곳이다,

브라질 관광 차가 거리를 덮었으며 아르헨티나 차가 길거리를 막고 있었다..

100대 200대의 관광차 안에서 사람들을 쏟아낸 버스는 주차할 곳이 없어 사람을 내려놓고 빨리 자리를 떠야 했다,

거의 전부가 세금이 없고 이상하리만큼 가격이 싼 이곳 파라과이로 물건을 사러 오는 것이다,

이곳에서 물건을 많이 사면 살수록 그들의 나라로 돌아가면

그만큼 더 이득이란것을 이곳에 오는 사람들은 잘 알고 있었다,

1983년도 이 나라에 와서 나는 세상에서 볼 수 없었던 아주 이상한 장면들을 바로 이곳 3국이 붙어 있는

국경의 도시 바로 이곳에서 보게 되었는데,, 비로소 이 나라 파라과이는 왠지 뭔가를 해도

크게 해 볼 수도 있다는 긍정적인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 도시는 이 나라 파라과이 사람이 아닌 다른 나라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면서 보세(세금 없는 )지역의 특수성을

너무나 만끽하고 있었다,

당시 비디오 기계가 브라질 아르헨티나에 서는 250불 정도 팔았지만,

이곳 스트로네스에서는 같은 기계가 반 가격에 팔리고 있었으니,.,,

전자제품이 얼마나 저렴하게 들어오는지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한국의 대우 TV가 브라질에선 150불에 팔리고 있었지만 이곳에선 100불이면 살 수 있었다,,,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사람뿐만 아니라 전 세계 사람들도

이 도시 스트로네스에 와서 각종 전자제품을 사가면 여행비를 뽑을 수 있는 그런 관광이었다,,

물론 파라과이에서는 볼 것이 없다,,

길거리에 카지노와 마약을 쉽게 구할 수 있는 곳 파라과이,, 그런 나라에 관광을 오진 않은 것이다

오는 목적은 오로지 보세품을 사러 오는 것이고 그 보세품이란, 세계 유명 업체를 포함한 모든 것이

그곳 파라과이에서는 있다는 의미도 된다,

벤츠 자동차도 미국에서 훔쳐 와서 세금도 안 내고 마구잡이로 배에서 내려놓고 그 자리에서

아무 번호판을 달고 타면 그만인 나라,

세계 어디에선지 도난을 당해 이곳에 흘러들어 오면 엄청나게 싼 가격에 거래가 되었다,

미국 마이애미 에서 도난당한 카메라를 실은 컨테이너가 무더기로 파라과이에서

발견되었다는 소문도 있었으면 각종 시계와 부속품들, 그리고 각종 유명 브랜드의 옷 등 모든 것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그곳 당시의 파라과이는 알게 모르게 넘쳐나고 있는 가짜들의 나라이기도 했다,

이런 시장의 최고 중심은 동쪽의 도시인 당시 이름 스트로네스였다,

이곳은 전 세계에서 세금이란 계념과 밀수라는 계념 자체를 아예 모르는 첫번째 나라가 아니엇을까,, 싶다,

스트로네스에서 차로 20분 정도 가면 이구아수 폭포가 나온다

이 폭포의 진짜 인디언 이름은 한글로 쓰면 의과수 라는 발음이 나온다,

이구아수는 내가 가본 물줄기 중의 최고였다,

미국의 요세미티에 있는 폭포는 이구아수의 한 줄기도 안 되었으며 미국의 나이아가라 강줄기 역시

이구아수의 한 부분도 안됐다,,

아무튼 그 입구에 들어가기 전에 물안개가 거리를 덮었고 앞이 안 보이며 폭포가 떨어지는 소리가

이미 나의 귀를 지배하고 있었다.,.

웅장한,, 위대함, 뭐라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거대한 폭포의 협곡이었다,,.

이구아수 폭포는 내가 당시 그리고 여태껏 본 많은 볼거리 중에 단연 최고였으며,

다시 파라과이를 간다고 하면 그 목적은 그 폭포 이구아수를 다시 구경하고픈 목적으로 갈 것 같다,

지금 그 스트로에서라는 이름은 없어지고 지금의 이름은 동쪽에 있는 도시라는 씨우다 데 에스떼(ciuda de este),, 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몇 년 전(2018년) 다시 이곳 이구아수를 구경해 봤다,

내가 있었던 1983년도 하고 너무나 많이 변했다,

강을 따라 놓여있는 조형물과 다리등이 당시보다 세련되어 있었다,

흘러가는 물줄기도 왠지 많이 줄어든 거 같다,

당시엔 요즘처럼 물 아래로 배를 타고 간다는 것은 상상도 못 했던 이야기다,,

그리고 국경을 넘어 그 도시를 방문해 봤다,,

여전히 분주했고 여전히 밀수가 성행하는듯해 보였다,

특히 스마트폰의 가격은 미국의 가격의 절만이면 살 수 있었는데,, 아직도 그렇다니 놀라웠다,

이 도시가 아직도 살아 있었다,, ,,그래서 반가웠던 곳이다,

나중 예기지만 난 결국 이곳에서 남들처럼 전자제품을 한국에서 들여와 바쁘게 6개월씩 살았던 적도 있을 정도로

이곳은 결국 나의 파라과이에서 또 다른 삶을 살게 해주는 역할을 하게 된다,,

그 이야기는 나중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