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민 이야기

브라질에서 만난 구세주들

김 항덕 2020. 8. 27. 06:29

드디어 브라질에 왔다,

그러나 어디를 어떡해 가야 하는지는 전혀 모르겠다,

당시엔 인터넷이 없었던 1986년도였다,

"어디를 가야 하는가"??,,

터미널에서 밖으로 나오면 조그만 길거리 커피를 파는 곳이 즐비하게 있었는데 그곳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그런데 낯익은 말소리가 들리다 한국 말이었다,,

나는 눈치고 머고 마시던 커피를 던져 버리고 그들에게 달려갔다,,

"죄송합니다 부탁 좀 드립니다",,

"한국 사람들이 있는 한인 타운을 가야 하는 데 도움을 주십시요",,!!!

구세주였다,,

브라질 밀입국 여행 중에 몇 사람의 구세주를 만났는데 이들이 그 첫째 구세주였다,,

그들이 나를 한인들이 주로 있는 봉헤치로 라는 거리의 어느 곳에 내려 줬고

그 근처에 중국인들이 하는 모텔을 잡고 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

지금 생각건대 그들이 나타나지 않았으면 말도 안 통하는 브라질

어느 터미널에서 어떤 다른 결정을 했을까 궁금하다,

상파울의 봉헤치로는 한인들의 밀집 지역이었다,

이곳에서 한국 음식을 먹을 수 있었고 곳곳에 한국인들이 많이 장사하는 곳이었다,

어딜 가나 한국인들이 있었기에 커다란 불안함은 일단 없었으나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보장받지 못하고 어떤 결정도 못하는 답답함은 계속 되었다,

이틀 정도를 호텔에서 무의미하게 시간을 보내고 심심하면 봉헤치로 거리를 어슬렁 거리며 보내고 있었는데.,.,

어느순간, 성당에 가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성당에는 열심히 다니지는 않지만 일단 나의 종교는 가톨릭 신자임에는 틀림없고 어릴 때부터 다닌

성당은 다른 종교보다 친근함이 있었던 것은 분명했다

봉헤치로의 한인이 하는 식당에 들여 한인 잡지 안에 있는 성당의 주소를 적었고 다음 날

택시를 타고 주소에 적힌 성당으로 갔다,

일요일 아침이었다,

일찍 한인들의 성당에 가서 내 또래 비슷한 사람들이 여럿 모여 잇는 곳을 눈여겨봤으며

미사가 시작될 때 그중의 한 명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말을 했는데,,

"파라과이에서 무작정 여행을 왔는데",, "같이 앉아서 미사 좀 볼 수 있겠습니까",..,

그는 환영해 주었고 나는 그곳 성당에서 2번째 구세주를 만난다,,

성당의 청년부에 들어가서 어울리면서 그곳 브라질 한인 청년부 H, 를 만나 그의 집에서 3달 가까이 지냈다,

어려운 밀입국 과정을 거쳐 신나는 브라질 생활을 하기 시작햇다,, 당시 ,H. 의 집은 봉제공장을 하고 있었고

그와 같이 일을 하고 용돈도 벌었으며 산투스 바닷가와 리우데자네이루도 여행을 같이했다

브라질의 여행 중에 많은 사람을 만나서 그들의 도움을 받았는데 난 그들을 지금도 나의 구세주라 생각하고 있다,

나도 누군가에게 구세주가 되고 싶다,,

브라질의 파올리스타 라는 거리가 있었는데 그곳의 거리는 서울의 빌딩보다

더 크고 세련된 디자인을 가지고 있었다.

당시 상 파울의 파울리스타 거리가 제일로 인상에 남아 있는데 그곳의 빌딩 숲속의 거리를 걷다 보면 한국적인

상식은 한국에서만,, 하는 아주 새로운 도시 문화를 겪게 된다,

그중에 하나 기억에 남는 것은 차를 타고 조용히 점잖게 가고 있는데 신호등 앞에 갑자기 나타난 매춘부들의 모습 같은 거다,

그들은 지나가는 자동차 앞을 가로막고 가슴을 내보이며 흔들어댄다, 그것도 꼭 경매하듯이 웃으면서

3~4명이 한꺼번에 가슴을 보인다, 또 하나의 풍경은 거리를 걷다 보면 게이들이 나와서

대놓고 사람들을 놀레키는 장면을 많이 봤는데 하는 이들이나 당하는 이들이 전부 웃음으로 떠넘기는 것을 볼 수 있다,

너무나 익숙한, 아무렇지도 않다는 느낌을 받았다

한국에서 보수적으로 자란 내가 이젠 서서히 새로운 문화에 흡수되고 새로운 문화를 알아가는 과정의 여행이 시작 된 것이다,

리우데자네이루에서 벌어지는 삼바 축제가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난 보지는 못했지만, 브라질 국민들의 삼바 축제에 대한 열정의 삶은 일상생활에도 볼 수가

있었다,

음악이 흐르는 곳에서는 엉덩이를 흔들어 대면서 춤을 춰 대는 모습을 길을 걸어 가면서도 종종 볼 수가 있다,,

서울에서는 감히 흉내도 내지 못하는 모습이다,,

이들의 축구 열기 역시 대단하다,

국제 경기가 열리는 날은 거리가 다 조용히 하며 만약 이기고 있을 때의 그들의 모습은 온 거리에 자동차의 빵빵거리는 소리가 귀를 피곤하게 한다,

만약 지고 돌아올 경우에는 그들은 공항을 빠져나오지 못한다고 한다,

지독한 축구광 들에 의해 살해 협박을 받기 때문인데 실제로 자살골을 넣은 어느 축구 선수가

공항에서 총격 살해된 경우도 있다고 한다,,

축구의 나라 브라질. 샴바의 나라 브라질,,

그 나라는 지금도 그 열기에 넘칠 거리며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3달 동안 브라질을 구경했고

다시 파라과이로 돌아왔다,

돌아온 이유는 파라과이의 모든 것을 정리하고 싶어서였다,

그동안 살아온 아파트며 자동차며 가구며 등등을 일단 정리를 해야 할 거 같았다,,

그리고 다시 브라질로 돌아가 그곳에서 살아가고 싶었다,,

그러나 그러지 못했다,

결국 다시 파라과이에서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