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이집트 여행

이집트 필레 신전

김 항덕 2024. 3. 23. 07:38

신전을 구경하러 가는데 배를 타고 간다고 했다,
 통통거리는 작은 배를 타고 가니 작은섬에 도착했다,
신전은 이집트 정부가 아스완 쪽에 커다란 댐을 건설할 때 

이 섬이 수몰될 위기에 처했다,
그때 유네스코와 영국의 도움으로 이 이 신전을 해체해서 다시 짜 맞추기식으로

 이곳 물에 수몰되지 않은 곳을 찾아 그대로 다시 옮겨놓았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왠지 모르게 신비감이 

많이 떨어진 느낌이 들었다,
왠지 현재 과학의 힘으로 다시 지어진 느낌이 들었다,

 

배를 타고 갈 때 주변엔 이렇게 많은 잡상인이 줄을 이었다,

 

많은 통통거리는 소리가 났다,

 

필레신전입구

 

약 4천 년 전에 만들어진 신전을 한국에서 태어난 내가

 드디어 구경을 하기 시작했다.

 

필라에 신전이 위치한 섬은 오시리스의 무덤들 중 하나로 알려진 장소다

세트가 오시리스의 시신들을 여러 토막으로 조각내어 뿌릴 때

그중 한 조각이 필라에 섬에 떨어졌다고 믿었기에 엄청나게 오래 전부터 신성한 장소로 여겨졌다.

이미 고대 이집트 시절부터 수많은 순례객들이 이 곳을 참배하려 몰려들었고,

신관을 제외하면 이 곳에 거주하는 건 불가능했다. 고대 이집트에서도 손꼽히는 성지였던 셈이다.

하도 사람들이 많이 몰려들자 신관들이 파라오에게 탄원을 넣어

최소한 공직자들만큼은 이 곳에서 숙식하지 말게 명령해달라고 간청했을 정도였다고 한다.

필라에 섬은 단순한 성소였을 뿐만 아니라 이집트인들과

 누비아인들이 만나서 교역품을 사고파는 무역 중심지들 중 하나였고,

덕분에 필라에 섬은 고대 이집트 시절 참배객들과 장사꾼

등 다양한 사람들로 북적거렸다.(옮겨온 글)

 

이집트 역사중 파라오의 시대가 끝나갈때는 

 당시 급격히 세력이 커진 로마가 있었다,
 로마 제국 시절에도 여전히 필라에 섬은 중요한 성소들 중 하나였다
  처음의 로마인들도 이곳 신전에 대해 

그리 큰 참견은 안한듯하다


필라에 신전은 고대 이집트 신전들 가운데 

마지막까지 이집트 신들에게 제사를 지내던 신전이었기에

 그것에 대해 존중의 의미를 갖춘것이

 아닐까도 생각이 든다,


결정적으로 기독교가 이집트에 서서히 전파되며

 그 전퍼력이 커질때는 상황이 급변한다. 

우상숭배를 죄악시하던 기독교도들이 필라에 신전을 조직적으로 파괴했고, 

특히 필라에 지방의 초대 주교 마케도니우스는 신전에서

 기르던 신성한 매의 목을 꺾어 죽여버리기까지 했다. 

기독교도들은 집요하게 필라에 신전을 박해했다


이후 시간이 흘러 기독교는 이슬람교에게 밀려났고, 
새롭게 들어온 무슬림들도

필라에 섬에 크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필라에 신전은 나일 강 한복판에 있던 섬에 위치하여 교통도 불편하고,

범람 때마다 잠기는 필라에 섬에 굳이 관심을 둘 필요가 없었다

기독교도들은 기존의 성지였던 필라에 신전을 조직적으로 파괴했으나

이슬람이 전파될 시점에는 이미 필라에 신전의 명맥이 끊긴지 오래였던 이유도 있었다.

필라에 신전은 버려졌고,

나일 강이 범람할 때마다 신전의

상당 부분이 점차 허물어져 갔다.

특히 1800년대에는 범람 정도가 점점 심해져

1년 중 대부분을

물 속에 잠긴 채로 보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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