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유럽 이야기/이태리

유럽여행 이탈리아 피렌체

김 항덕 2020. 7. 2. 03:47

사실 이탈리아의 방문은 내가 블로그에 

사진을 넣으려고 준비를 했던때가 아니였다,
전혀 준비가 되지 않은 이탈리아의 피렌체의 여행이다, 


이탈리아의 역사의 중심지이며 

종교의 중심지.예술의 중심지이기도 한 피렌체의 여행은
미켈란젤로 광장에서부터 시작을 했다,


미켈란잴로 광장에서 내려다본 피레체의 모습은 

모든 역사와 예술의 종합 체를 본것이었다,
이곳 피렌체의 모습은 당시에 지어지고 나서 

현대까지 보존되어 내려온

 그 어떤 장소의 건물들보다 더 사실적이며
잘 보전되어 졌다고 한다,
 피렌체 여행중에 잘 나온 사진들이 없었다,

그러나 찾고 찾아 그중에 잘 나온 사진들로만 추려봤다,


피렌체 남쪽 언덕들을 따라 줄지어 선 침엽수들과

 매혹적인 풍경들 사이로 미켈란젤로 광장에 이르는 큰길이 뻗어 있었다,


건축가 포찌가 19세기에 설계한 

이 광장에서 피렌체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큰길로부터 시내를 향해 올리브 나무 사이로 좁고 고요한 

수 많은 작은 길들이 뻗어있는데

 베르나르도 부은탈랜티가 16세기에
건축한 포르테 디 벨베테레에 이르는 그림 같은 

산 레오나르도 길을 대표로 들 수 있다,
이 도시의 역사는 

기원전 59년 줄리아스 시저 때에 로마인들이 플로렌티아 라는

 식민지를 건설함으로써 시작되었다,


시가 중심의 모양은

 사방 500미터의 면적에 그물식 

도로망을 가진 로마군영지 구조였다
동서남북으로 뻗은 십자형의 중앙도로는

 각각 오늘날의 비아 델리 스페찌알리와 

비아 트로찌.비아 갈리마라.비아 로마에 해당된다
현재 레푸블리아 광장이 중심이었다


피렌체 라는 이름은 플로아 ,즉 꽃을 의미한다
라틴어 프로랜티아 에서 나왔다,,


전설에 따르면 비옥하고 화초가 만발한 강변에 자리 잡은 주민 들이 

번성하기를 기원하는 의미에서 이름 지었다 한다,

토스카나주의 주도로서,

 대략 50만 명의 인구를 가지며, 거의 이탈리아반도 중앙에 해당하는
아드리아 해와 티레노해 사이의 아르노 강의

퇴적층위에 널리퍼져 발달했다. 


산업과 예술, 상업과 문화, 예술과 과학이

 혼재하는 도시로 알려지고 있다 


겨울의 미풍과 뜨거운 여름을 가지며,

 기후는 비교적 온화한데 일시적으로

 극단적인 계절적 기온을 나타내기도 한다.

이테리라는 거대 도시를 접하다 모면 어쩔수 없이 

역사를 알아가야 할것같다,

 

당시 세계의  중심엔 분명 이테리가 있었다,

 그랬기에 이테리의  여행은 자연스레

 역사 공부까지 하게 만들어 준다

 

 

관광객들의 모든 이목을 끄는곳은

 4지역으로 함께 묶어놓을수 있는데,
4지역 모두 도보를 이용해 쉽게 방문할수있다.

위치적으로나 역사적으로도 피렌체의 중심지로 알려진 곳은,
두오모가 있는 산타크로체 구역, 

산로렌죠 북부와 산마르코지역, 

기차역 부근인 산타마리아
노벨라부터 이어져 공화국광장의 서쪽까지 이어지는 구역, 

폰테 베키오, 메르카토 누오보와 피티궁전,
산토 스피리토, 보볼리정원과 산타마리아 교회와

 카르미니오 교회가 어울어지는 아르노강 

건너편의 전체지구로 나눌수 있다.



 


도시의 동부지역은

 폭이 좁고 밀집된 옛날 주거지역의 뒷골목으로 이루어져

 중세의 분위기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Ghiberti에 의해 설계된 또는 

세례당이 딸린 대성당(두오모)또는

 산타마리아 델 피오레 성당과 Giotto(죠토)에 의해 설계된다


아름다운 종탑이 이지역을 빛낸다.
오르산미켈레, 칼자이우올리 가에서 찾아볼수있고

 도시내의 13세기 건축물중

가장 아름다운 예를 보여준다. 


바르젤로 갤러리는 프로콘솔로 가에 위치하고 있다. 

갤러리에는 미켈란젤로, 도나텔로와 첼리니의
작품인 피렌체 르네상스 조각품이 전시되고있다


 


도시는 기차역 서쪽에서 부터 폰테 베키오 다리의 서쪽지역까지 한정된다

.
그리고 베키오 다리위엔 

많은 고전과 현대적 보석세공점이 입점해 있다

 

 공화국 광장, 피렌체에서

 가장 활기에 넘치는 장소중 하나로, 

도로에서 가까운곳에 위치해 있다. 


이곳은 또르나부오니 길과 비냐 누오바 길을 포함하는 지역으로,

 두지역 모두 상당히 세련된 쇼핑가와 분위기 넘치는
카페들이 있는곳으로 유명하며,

 15~18세기 주요건축물과 

세련된 상점이 늘어서 있다,. 

 

스트로찌 궁전은 이지역의
가장 아름다운 피렌체 르네상스풍 건물의 좋은 예로 꼽히며,

 Gabinetto G.P Visseux를 

포함하는 다수의 문화 학회를 개최한다,


바르젤로 미술관, 이탈리아의 

가장 포괄적인 범위의 중세, 르네상스 시기의 

조각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주목할 만한 작품으로는 

미켈란젤로의 술취한 Bacchus, 도나텔로의 다비드,
부르넬레스키 디자인의 세례당 문을 위한

 공모작품(길베르티의 작품이 당선됨)과 쟘볼로냐의

머큐리가 있다.


 바르젤로 미술관 이전에 중세시대엔 많은 사람들이 

고문을 당하던곳으로 경찰본부와

 감옥으로 사용되었고
그런 연유로 외벽은

 상당히 두터운 방벽으로 보강되어있다. 

 

미술관 부근엔 죠또의 공방에서
작업했던 프레스코화를 소장하고 있는

 마리아 막달레나 예배당을 찾아볼수 있다



 

 시뇨리아 광장, 수많은 관광객으로 가득찬 거대하고 육중한 저장고다,

도시의 가장 훌륭한 광장으로

 13 세기에 아주 우연한 사건으로 새로이 만들어졌고,
그이후 부터 피렌체의 정치적인 

논쟁이 빈번한 곳으로 유명하며,

 주변에 늘어선 역사적인 건물과 역사를

 모티브로한 조각상들이 즐비하다


 정치적 혼란기에 들어서, 

시민들은 대중투표를 위해 이곳에 소집되곤 했다. 


일반적으로 갈등하는 가족간의 사건 소사들을 결정했었고 

종종 열광한 폭동으로 번지곤 했다.
이러한 감동들은 베키오궁 앞에 있는

 arringhiera(단상)로부터 전달된 정치적인 이야기에 의해 곧잘 섞이곤 했다. 


우리는 어디로부터 'arringa'(연설)라는 

단어가 오는지 유추할수 있다.
오늘날, 관광객들은 상당히 잘 준비된듯이, 

유명한 장소에서 멀리 떨어진채로 사진만을 

찍거나 터무니 없이 비싼가격의
식당에서 커피를 홀짝거리며 마시거나,

 '좋은 대리석 덩어리의 앞에서 멋 있는 포즈를 취하면서 

사진만을 찍고 가버린다,

 

물론 나도 그렇고 같이간 일행들도 마찬가지다,

 

 

 

산로렌죠 광장, 피렌체의 최고 절정기를 상기시키는 곳으로,

 코시모 데 메디치가 최고의 군림자이며
문화적인 창조가 왕성할 무렵이다
.


산로렌죠 성당은 

1425년 부르넬레스키에 의해 시작되었으며

 피렌체에서 가장 순수한 르네상스 교회로 알려져있다


동쪽 입면은 상당히 흥미로운 부분으로,

 적은 장식과 고대 벽돌공법으로

 축조된것으로 알려져 있다.
메디치가의의 가족 교회이다. 


그리고 그 가족의 대다수 일원은

 이곳에 묻혀있다고 한다


 도나텔로는 청동 설교단을 설계했다. 

그리고 그또한 예배당에 묻힌 인물중에

 한 사람으로 남게 된다
. 수도원을 통과하면,

 미켈란젤로에 의한 장엄한 층층대를 특징으로 하는,

 메디치가에서 수집한 대단한
수량의 책이 수장된 라우렌지아나

 도서관에 도달한다. 


메디치가족 예배당은 귀한 대리석과 

준보석의 돌을 가지고 장식된다;
가장 권위있던 메디치가 사람들은 후에

여기에 묻히고 만다,새로운 성구 보관소는
 미켈란젤로에 의해 설계되었고

 메디치가의 밤과 낮과, 

여명과 황혼기의 조각을 지니고 있다.



 


 

 피렌체는 미칼란젤로가 태어났고 유명한 철학자 단테가 태어나고 활동을 했던곳이다,
1252년도에 처음 금화 피오리노 도로 가 주조되었으며 유럽에서 가장 가치있는 화폐가 된다
1439년  대공의회를 개최 하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