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여행 이야기/운대산

중국여행 용문석굴

김 항덕 2020. 7. 3. 03:42

중국의 3대 불교 석굴 예술보고의 하나이며 400년에 걸쳐 조각된 석굴이다

  2000년 11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으로 등재되었다

용문석굴은 낙양에 있으며 정주에서 차로 약 2시간 30분이 소요된다

 

용문교와 이어지는 북쪽 입구로 들어서면 왼편으로는 햇살을 머금은 이하강이 반짝 반짝 빛난다.

 강의 동쪽으로는 동산석굴, 서쪽으로는 서산석굴이 마주한다. 강변을 따라 나 있는 산책로는 걷기 좋은 길이다.

남쪽 입구까지 걷는데만 약 20~30여 분이 소요되는 길이인데다가 석굴을 가까이에서 보기 위해서는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해야 하기 때문에 쉬운 길이라고는 할 수 없다.



 

우리가 타고 온 자그마한 20인용 미니버스

는 용문 석굴 입구에 주차를 했다,
우리는 그 이후로 30분 정도를 걸어야만 이곳 

용문 석굴 입구까지 갈 수가 있단다,
또 걸어야 했다, 


걷는 중에 나이 많으신 어주머니가, 힘들어!! 하신다,
그리고 입구까지 우릴 내려주고 다시 이곳에 오면 되는데

 왜 거기 까지 걸어가야 하냐고 

가이드 한테 항의를 한다,
아마도 용문석굴까지 여행버스는

 들어갈 수 없는 규정이 있나 보다..


우리는 터벅터벅 걷고 있었다,
그런데 뒤에서 빵, 빵, 하는 자동차 클랙슨 소리가 나서 

가는 길을 잠깐 멈추고 뒤를 돌아봤다
예쁘게 생긴 하얀색 뚜껑 없는 미니 자동차가

 우리에게 길을 열어 달라는 듯이 불까지 켜고 달려온다
가만 보니까 약 5대 정도의 미니 자동차에 

관광객을 태우고 달려오는 것이었다,
그것도 얼핏 보니 한국 관광객들이다,

그리고 그 관광객들의 입가엔 

행복한 웃음들이 한가득하다,
그 자동차만이 이곳 용문 석굴 정문 앞까지 오는듯하며

 아마도 주차장에서 얼핏 봤었던 

그 미니 자동차 들이었다,
미국의 골프장 같은 데서 흔히 볼 수 있는듯한 차들이었는데,

 그 차에 4명 정도를 태우고 있었다 


나도 그것을 타고 달려오는 그 사람들이 부러웠다,
나이 드신 어르신들은 얼마나 부러워했을까 

지금 생각해도 그 모습이 눈에 선하게 들어 온다.,

 

용문석굴까지 가는 길은 여느 중국의 관광지역처럼 

예쁘게 단정을 해 놓고 정성껏 

관리를 하는 거 같았다,
용문석굴에 다다르고 안내자는

 우리에게 표를 나눠준다,
그리고 입구에 들어섰을 때 우리는

 더욱 정성을 들려 가꾸었다는

 느낌을 받는 강 하나를 볼 수 있었다, 


이 강 건너편 멀리에 보이는 궁궐 같은 커다란 것이

 그 옛날의 측천무후가 들어 잠시 쉬어 갔었다고 한다,
아래쪽에 보이는 뾰족한 옛날 풍의 집에서는 

장개석 장군의 별장이라고 한다 


많은 중국의 왕들과 권력자들은 이곳을 들러봤으며 

유일하게 단 한 명만이 이곳을 구경 못한 권력자가 있는데

 그가 바로 모택동이다


용문석굴 입구에서 또다시 걸었다,

 
입구가 끝이 아니었다. 입구에서 부터가 진짜 시작이었다,
입구에서 또 15분 정도를 걸었는데 

그때 오른쪽에 보이는 허연색의

 석굴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눈앞에 보이는 것으로도 와... 하는 함성이 절로 나왔다,
그리고 석굴을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 계단을 올라간다, 


그런데 계단을 따라 올라가서 바로 옆쪽으로

 연결이 된 것은 다행히도 편하게 구경을 할 수가 있지만
그렇게 전부를 만들어 놓지 않았다,

 

계단을 올라가서 옆쪽으로 연결되어

 편히 옆쪽의 석굴을 볼 수도 있는 것이 있었지만
대부분 다시 내려와서 다시 옆쪽의

 계단으로 올라가야 한다,
오르락 내리락을 반 복 해야 했다, 


나이 드신 분들은 이미 기권했으며
나도 힘들게 오르락 내리락을

 반 복 하면서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올라갔다. 내려오고 다시 올라가서 내려온다,
높은 절벽은 아니었지만 여러 번 반복하니 지치기 시작했다,
가장 끄트머리 

석굴 구경은 포기하기로 한다,
용문석굴의 장엄하고 그 커다란 규모를

 나는 확인한 것 만으로도 만족을 했다.,

 

용문 석굴 입구

!!용문석굴!!

용문석굴은 용문산에 있는 석굴이라 하여 용문석굴이다.
 용문석굴은 대동의 운강석굴과 둔황의 모가오굴과 함께중국의 3대 석굴로 꼽히는데 저 작은 굴 하나 하나가장인이 한땀 한땀 정으로 때려서 만든 굴이라고 하니 참 대단한 것 같다. 그 안에는 불상들이 모셔져 있는데 그 수만해도 무려 10만여개라고 한다





가장 먼저 소개할 것은 '빈양삼동'이라고 불리는 석굴이다.

 

계단을 올라가면 한 벽면에 

총 3개의 석굴을 만날 수가 있는데,

이곳에는 각기 다른 시기에 조각된 불상들이 놓여 있다. 

이곳은 용문석굴에서 가장 최초로

 만들어진 것으로 북위의 '효문제'가 어머니께

덕을 쌓아주기 위해 만든 것이다. 가운데 

석굴만 완성하는데 80만 명의 인력을

동원했음에도 24년이라는 긴 시간이 걸렸다.

나머지 두 개의 석굴은 당나라 때가 되어서야 완성이 되었다.



 



가만히 살펴보면 각 석굴에 놓여진 

불상의 생김새가 다르다.

 북위 때의 것은 갸름하고 얄상한 생김새라면, 

당나라 때의 것은 조금

 둥그스름하게 복이 가득한 생김새를 갖고 있다.

 작품이 만들어진 시기의 

심미관을 들여다볼 수 있는 부분이다.





용문석굴에서 유명한 곳 중의 하나인 만불동은 

동굴 하나에 불상이 

만 개 이상 새겨져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이 석굴은 당나라 때 당고종과 측천무후의 

만수무강과 사후 극락 왕생을 위해서 만든 것이라고 한다.

 

 만 개가 넘는 불상들이 촘촘하게 새겨진 것도 

그렇지만 각 불상의 표정이 제각각 

다른 것 또한 신기하다.





작은 동굴에도 불상은 꼭 있었다.그러나 보다시피 머리가 떨어져 나간 흔적이 많이 보이는데,이는 불상머리를 소장하면 복이 온다는 미신 때문이기도 하고,문화혁명 당시 홍위병에 의해 파손되기도 했다 한다.
 참 안타까우면서도 어떻게 칼로 자른 듯 머리만 싹 베어갔을까 그 기술이 놀랍기도 했다. 





만불동에는 용문석굴에서 가장 아름다운 관세음보살상이 있다.빼어난 균형미로 가장 요염한 자태를 자랑하는 이 보살상은 송나라의시인 소동파의 넋을 빼놓기도 했다고 한다.
아름다운 자태를 자랑하는 미녀의 얼굴은 잘려나간 상태라 안타까움을 자아낸다.용문석굴에는 이렇게 얼굴이나 코, 목등 신체의 일부가 잘려나간 불상들이 많다.
세월에 의해 훼손되거나, 종교적·사회적인 이유로 고의적으로 파손된 것이다







용문석굴의 이런 모습은 총 1.5km에 걸쳐 장관을 이루고 있고,

언뜻 보기엔 큰 벌집처럼 보이기도 한다.

 

북위 시대인 5세기 말부터 

당나라 때인 9세기까지 2300여개의

석굴이 조성되었다고 하니 실로 대단하다. 

 

웅장함이란 이런 것을 뜻하는 듯 싶었다. 















불상 중에 가장 큰 노사나불은 당나라 시대에 조성된 것으로중간쯤 위치한 봉선사라고 이름을 가진 봉우리에 있다 
불상의 모델은 중국에서 불교가 가장 왕성한 당나라 시대중국 유일의 여황제 측천무후라는 말도 있다, 
이후 측척무후는 완성된 자기의 얼굴을 딱 한 번 보고내가 저렇게 생겼나? 말하고 돌아갔다는 말이 전해 내려온다



길게 늘어진 모습, 1.5km에 걸쳐서 만들어진 용문석굴 이다









촘촘히 들어선 석굴들과 거대한

 불상들이 시선을 사로잡지만

그 중에서도 용문석굴의 백미라면 봉선사의 

노사나불을 꼽는다.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야 

만날 수 있는 노사나불은

높이가 무료 17.14m로 머리 크기만 3m라고 하니

 그 크기가 엄청나다.

 

크기도 크지만 측천무후의 얼굴을

 본 떠 만든 것으로 예술적 가치는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지금은 세월의 흔적으로 훼손된

 역사적 유물을 복구하려는 공사가 한창이다.

강 건너에서 바라보는 노사나불은

 가히 압도적이다.







용문석굴도  좋았지만  맞은편에 있는 

강가의 풍경에 마음을 뺏겨 한참을

 넋을 놓고 바라봤다.

한적한 멋들어진 중국식 풍경이며,

 햇살을 등진 늪과 같은 운치있는 풍경에

 시선을 거둘 수가 없었다

 





석굴 맞은편엔 분위기 좋은 이수강이 흐르고 있고  강가 맞은 편에 국민당 장개석 장군의 별장도 보인다.,


용문석굴을 보고 걸어서 강의 맞은편으로 건너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