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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은 파라과이 점심은 브라질 저녁은 아르헨티나

파라과이는 당시 성냥 하나 만들어 내지 못한 나라였다, 생필품 거의 전부를 이웃 나라에서 아니면 다른 이민자들에 의해 밀수로 들여오곤 했는데 그것이 당시 파라과이의 시장경제였다, 그래서 그런지 당연했던 것은 이런 가난한 나라에 전 세계적으로 유명하다는 자동차는 거의 다 있었다, 특히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서 넘어온 유명 자동차가 자갈로 만들어진 이 거리를 달리는 것이 조금 이상하게 느낄 정도로 발란스가 안 맞는다고 생각을 하곤 했다,, 나중에 안 것은 수많은 자동차를 훔쳐서 이 나라에 갖고만 들어오면 번호판이 너무 싶게 나온다고 한다, ​ 아마도 세금을 내고 장사를 하라 했으면 파라과이에 있을 사람은 거의 없었을 거다, 내 나이 22살 땐 뭐 이런 나라가 있어,, 하는 푸념의 말들을 많이 했으나 시간이 흐르..

우루과이의 수도 몬테비데오는 사람이 없는 유령의 도시 같았다

​ ​ ​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우루과이까지 가는 배를 탔다, 우루과이만 남겨두고 아메리카 대륙은 전부 돌아봤기에 한 나라 남은 우루과이는 꼭 가보고 싶었다,, 우루과이는 여행에 대한 동경심보단 한나라 남은 거 일단 한번 찍어 봐야겠다는 심보가 더 컸던 거 같다, ​ 같이 간 사람들한테 꼭 우루과이는 가야 한다고 내가 우기며 출발을 했다, 배는 수도인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중심에 있는 어느 강가에서 출발했는데 운영하는 거나 시설 면에서 깔끔하고 좋았다, 배는 2시간 정도 걸렸고 우루과이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 10시경이었다, ​ 일단 밖으로 나온 우리는 이미 배 안에서 샀던 시티 투어 티켓을 들고 물어물어 밖의 어느 정거장까지 걸어갔다, 투어버스는 일 인당 약 50불 정도였으며 볼거리들을 보고 오후 ..

헤이 꼬레아! 라고 불리고 있었다,

파라과이가 그리 나쁜 것만이 있던 것이 아니었다, 22살의 어린 청년의 눈으로 본 이곳의 아가씨들은 눈부시게 아름다웠다는 생각이 들었다, 파란색 눈과 밤색의 눈이 많았고 피부는 백인형의 얼굴에 검은 머릿결이었지만 한국에서 갓 와서 본 당시의 눈엔 정말 외국의 여인들을 보는 것이었다, 나중에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를 밀입국을 해 여행도 하면서 파라과이 여인들과 비교를 했지만 특히 파라과이 여인들은 이쁘고 순박함까지 있었다 이민 온 한국 사람들 중에는 만만치 않게 파라과이 여인들과 결혼을 해서 사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만큼 파라과이 여인들은 순박했고 예뻤으며 부지런했다, ​ 동양사람,, 특히 한국 사람들은 유난히 그곳 파라과이에서 그곳 현지인들에게 눈에 띄고 있었는데 당시 1983년도의 파라과이는 엄청난 이민자들..

이민은 잔인하다는 거였다

파라과이 시대에서 가장 인상에 남는 시기는 친구 없이 외롭게 지내던 그 1년의 세월이었는데 그 1년이란 시간은 이민시기에 대한 거의 모든 것을 이해했다고 말해도 좋을 정도로 많은 것을 경험했는데 결론은 이민은 잔인하다는 거였다,, ​ 한국의 친구들에게서 거의 일주일에 한두 번씩 편지가 날아들어 왔는데 동네 친구들부터 성당의 친구들 그리고 이곳에 오기 바로 전까지 가장 많이 어울렸던 대학 때 친구들로 부터였다, 그러고 보니 여러 군데서 많은 친구가 나에게 있었다, 문제는 이들의 편지 내용이었는데 거의 전부가 군대 가기 전에 신나게 놀고 있다는 내용이었고 당시 내가 떠나오기 바로 전 같이 추억을 쌓아갔었고 그 추억의 후기에 대한 내용이었다, 그것들은 23살의 신나게 놀아야 할 나의 기를 꺾는 내용이었다,, ..

파나마에서 악몽 같은 "꽈뚜로 꽈드라"(4블록)에 대한 추억

(파마나 시티에서부터 걸어서 결국 바닷가에 와서 시내쪽으로 바라다본 모습) ​ 멕시코부터 시작해서 남쪽으로 계속 내려가 보자는 결심을 하고 실행에 옮기는 중이었다, 약 40일 정도의 시간을 갖고 남미의 가장 끝에 자리한 우루과이까지 가보자는 굳은 결심을 하고 떠났지만, 도중 콜롬비아를 마지막으로 결국 여행을 포기해야 했다,(2012년도) 6년 후 나머지 가 보지 못한 모든 나라를 남미 2차 여행이라 생각하고 모두 끝마쳤는데(2018) 이번 이야기는 1차 때 파나마에서 있었던 추억이다, ​ 파나마는 공항에서부터 다른 이웃 나라하곤 많이 달랐다, 일단 공항이 크고 깨끗했으며 무엇보다 밖에서 대기하는 택시들이 이웃 나라보다 새것이었고 쾌적했다, 도시를 빠져나오면서 보이는 풍경도 이웃 나라들과는 아주 달랐다. ..

여행 중 너무나 한국 음식이 먹고 싶어 중국 식당에서 매운 소스를 주문했다

여행 중엔 아무래도 먹을 것이 늘 고민이다, 특히 여행사에서 알아서 해주는 단체여행이 아니고 혼자서 하는 긴 배낭여행일 때는 약간의 음식 고통은 수반할 수밖에 없다, 특히 한국 사람은 얼큰한 음식과 김치는 꼭 필요한것 같다, 처음 여행을 시작했을 때는 음식에 대해 걱정은 하지 않았고 오히려 한국 식당이 있어도 먹지도 들리지도 않고 지나친 경우도 있었다 중미 파나마를 여행 중 우연히 호텔 바로 앞에 한국 식당이 보여 한 끼 정도만 한식을 먹은 것이 마지막이었다, 계속 여행을 하는 도중 가면 갈수록 한식에 대한 욕망이 끝없이 다가오기 시작했고 어느덧 음식을 먹지 못함에 있어 약간의 스트레스도 일어나기 시작하고 있었다,, 40일간의 여행 중에 김치와 얼큰한 한국 음식을 먹지 못한다는 것은 행복함과 만족함을 얻..

콜롬비아 여행 때 카지노에서 룸바 춤을 추면서 놀음을 했다,

​ 콜롬비아 메데인은 남미 특유의 풍요로운.. 그들만의 특유의 여유로움이 가득했고 얼굴에는 늘 미소가 있었다, 수도인 보고타하곤 많이 달랐다, ​ 역시 이곳에도 주변에 카지노들이 많았다, 이곳 카지노는 그리 크지 않았지만, 사람이 붐빌 정도로 바빴다, 세계 어디를 가도 도박은 좋은 비즈니스다 메데인에서 가장 명동이라고 불리는 거리에 호텔 카지노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세계 어디를 가도 카지노 안에는 늘 사람으로 붐비는데 이곳 역시 마찬가지이었다, ​ 호텔 주변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세 군데의 카지노가 있었다, 제일 가까운 호텔 카지노에 들러 게임을 하기도 했지만 그곳에 가면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는 식당이 있어 저녁을 먹으로 가는게 편했기 때문이다, ​ 그곳은 참으로 특이했고 유쾌한 곳이었다, 안에서는..

카지노 때문에 망쳐버린 이민 초기

무턱대고 벤데라는 것을 한답시고 봉제공장을 돌아다니면서 옷가지들을 가지고 막상 밖으로 나와 처음 마주하는 파라과 주민의 초인증 없는 집 앞에서 손뼉을 치며 쉬고 있는 사람들에게 옷을 사라고 소리치는 내 모습도 이상하지만 그런 것이 타고난 기질처럼 아무런 창피함을 느끼지 못하고 하는 나도 참 이상스러웠다, 아주 자연스럽게 행하고 있는 내 모습은 왠지 이민 생활을 아주 많이 한 고참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남들은 너무나 창피해서 도저히 이들의 집 앞에서 소리를 지르지 못했다고 하는데 난 너무나 자연스럽게 아무 집이나 들어가고 소리 지르며 내가 갖고 온 옷을 팔기 시작했는데 거의 스페인어를 하지 못했지만 손짓 만으로 옷을 많이 팔았다, 그렇지만 파라과이의 날씨는 그 당시 나에겐 그 어떤 장애물보다 더한 고통이기..

콜롬비아 메데진에서 벌레에 물려 죽을뻔한다,

80년대 마약왕 파블로 에스코바르의 주 활동 무대였던 메데진은 콜롬비아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로 콜롬비아 땅의 중앙에 있다, 상업 및 산업 활동의 중심지뿐만 아니라 문화생활 및 예술가들의 낙원으로 평가받는 도시다, 연중 기온이 24°C로 온화한 곳으로 겨울철이 없는 도시로서 밤 문화를 즐기수 있는 곳으로도 유명세를 타고 있다, 특히 언덕에 있는 이곳의 크고 독특한 유명 식당들은 멀리서도 찾아오는 명소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에 위치한 메데진은 이곳을 방문하는 여행객들에게 그 독특한 매력을 확실히 선물해주는 곳이다, 황토색이 도시 둘레를 감고 있으면서 언덕에는 온통 집들로 꽉 채워진 이 도시는 여러 도시를 여행했던 나도 이곳의 분위기에 살아보고 싶은 도시로 찜을 하기로 했을 정도다, 첫..

돈을 주니 면허증이 나왔다,

파라과이 생활 중 가장 상식을 깨버린 사건은 운전하지 못했는데 면허증을 받은 거와 차를 먼저 사고 운전을 배웠다는 거였다, 운전 면허증을 내주는 건물 안은 많이 분비고 복잡했던 곳이었는데 그곳에 발을 디뎌 놓는 순간 수많은 정체 모를 사람들이 다가와 면허증을 해 줄 테니 만 과라니(당시 파라과이 화폐)를 내라고 해서 얼떨결에 돈을 냈다, 1시간도 안 되어 면허증을 만들어서 왔는데 정식으로 정부의 인증을 받은 면허증이었다, 상식적으로 면허증은 운전을 테스트해 보고 시험도 보고해서 나오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한국에서 친구가 차를 몰고 다니기 전 면허증 시험을 보러 당시 흑석동으로 몇 번 같이 다닌 적이 있었다, 배우고 공부하고 필기와 실기시험을 보고 면허증이 나오는 게 거의 상식이었는데.,,, 파라과이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