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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아주 조금씩 이민 생활을 알기 시작했다

파라과이는 브라질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볼리비아의 가운데 위치한 나라다, 이들끼리 말을 하길 파라과이는 남미의 심장이라고 자랑하지만 파라과이에 7년 동안 살아온 나는 전혀 심장과 같은 중심의 나라가 아니라 본다 나라의 위치는 그럴 수 있으나 내가 본 이 나라 실상은 브라질 아르헨티나 사이에 끼워져 있으며 그들에게 세금 없이 물건을 팔아먹는 전형적인 거지 나라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나마 다행으로 여긴 것은 이 나라가 이렇게 불완전하며 부정부패의 국가였기 때문에 그나마 생존할 수 있었다는 기막힌 아이러니를 느낄 수 있었다, 세금이 많고 너무나 정직한 정치를 한다면 이런 가난한 나라에 들어와 왜 고생하며 이민 생활을 하겠는가,, 아무튼 이 나라에 들어온 한국 사람들 대부분은 옷에 관한 일을 하고 있었는데 예를..

블러섬 트레일(Blossom Trail)의 향기

블러섬 트레일(Blossom Trail)은 생거(Sanger), 센터빌(Centerville), 밍클러(Minkler), 리들리(Reedley)를 아우르는 62마일의 코스와 20여마일의 오렌지 코브(Oragne Cove) 일대를 합친 지역을 말한다, 2월 3번째 주부터 약 2주간 만개한 꽃들을 볼 수가 있다고 한다 가는 길은 5번 프리웨이 노스를 타고 가다가 99번 노스로 갈아타고 2시간30분 정도 더 북상하면 프레즈노 도착하기 전에 있다, 블러섬 트레일 정보는 프레즈노 관광국(www.fresnocvb.org) 문의 (559)445-8300 또는 www.goblossomtrail.com 위의 사진은 2월 25일 촬영한 사진이다, 아직은 한참 활짝 피어오른 이 꽃을 보기엔 바로 이번 주가 최고의 날이라 할..

베네수엘라에서 전문 깜비오(야매꾼)도 되어보다

말가리타 섬 다운타운이다 약 3블록에 걸쳐 상점이 밀집되어 있는데 거의 90%가 중국인이 주인이다, 쿠마나에 있을 때 한국 사람으로부터 이곳 베네수엘라의 특이한 점 몇 가지를 알았다 그중의 하나가 이곳에 달러의 가치에 대한 많은 정보였다,, 달라는 공시 가격으로 바꾸는 것 보다 야매로 바꿔야 2배 이상의 차익을 남긴다 한다, 예를 들어 100달러는 4000볼리바르가(베네수엘라의 화폐단위) 공시 가격이다 야매로 바꿨을 거야 우 12,000볼리바르까지 바꿀 수가 있다 약 3배의 차익을 낼 수가 있지만 아쉬운 것은 공항에서 이 나라를 떠날 때 이곳 야매로 바꾼 돈을 공시가격인 4,000볼리바르로 바꿀 수 있느냐, 그럼 그 차익에서 얼마를 버는 것인가?, 질문을 해봤다, 만약 공항에서 달라로 바꿀수만 있으면 1..

pablo라는 이름과 새로운 싸인이 생겼다

파라과이에서 생활은 적응할 수가 없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울음이 나오고 몇 번이나 화장실 벽을 치고받고 , 그러나 이제 이곳에서의 생활은 현실이었고 비실거리면서도 살고는 싶었다, 이민 생활의 불편함은 조금씩 적응해 나가고 있었던 거였다, 본격적으로 이민 생활에 대한 적응을 해 보기로 했다, 먼저 이민 생활을 해야 할 때 먼저 고민해야 할 것이 두 개가 있다, 파라과이 사람들에게서 내 이름이 뭐냐고 여러 번 질문이 들어왔는데 그때마다 내 한국 이름을 불러주다 보니 그들은 당연히 내 이름을 기억하거나 불러보기에 어려움이 있었다, 이곳에 맞게 이름을 정해야 했다 이곳 사람들에게 스페인어로 생활하는 파라과이의 이름, 당연히 스페인어식으로 만들어지고 이곳 사람들이 나를 쉽게 불러볼 수 있는 이곳 이름이 필요했다 ..

뭐? 자식들 때문에 이민을 와서 살아???

파라과이는 동화 같은 나라였다 그곳에 살면서 늘 생각은 객관적이었다, 이 나라를 평가하는 것을 즐겼는데 결론은 이건 나라도 아니라는 것으로 끝을 내곤 했고 일기장에서도 수많은 글 중에 이런 나라가 있나??,, 하는 물음표의 연속이었다, 파라과이의 전체 인구는 당시에 3백만 명 정도 되는 것으로 기억하며 이웃에서 그리고 유럽이나 다른 나라에서 이민 와서 마구잡이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백만 명 정도 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언어는 스페인어이다, 약 100년 전에 이웃 나라 볼리비아하고 전쟁해서 남자가 거의 없다시피 해서 모계 사회인 나라, 그래서 인구를 늘리는 정책을 폈는데 이 나라에서는 강간이라는 단어가 존재하지 않고 섹스에 거의 오픈이 되다 싶은 나라, 길거리에서는 창녀가 많이 있고 어디에서건 마약을 쉽게 ..

동화 같은 나라 파라과이로 이민을 갔다

1983년 내가 기억하는 한국은 온통 최루탄 가스와 학생들의 대모로 온 나라가 시끌버끌 했던 군부의 암울한 시기였다,, 당시 나는 피가 쉽게 끓어오르던 용기와 패기에 넘치는 대학 3학년 때였다, 전두환의 광주사태로 당시 대학생이었던 나는 역시 같은 시대를 살아가던 다른 학생들처럼 학교에 가면 대모로 온 종일 보내고 집에 들어가는 길엔 학사주점에 들러 현 상황을 성토하며 하루를 보내던 시기였다, 운이 나쁘게도 이럴 즈음 난 친구 7명과 함께 경찰의 조사를 받게 된다,,,,, 그걸 안 아버지는 손을 써서 나를 해외로 보내게 된다, 그렇게 갑자기 아무 계획도 없이 갑자기가게 된 나라가 남미 파라과이었다. 정확한 날짜는 1983년 12월 6일이었고 아마도 그 주에 첫눈이 내렸다고 기억이 난다, 그리고 출발했던 ..

자메이카 수도인 킹스턴의 살벌했던 두 블록

자메이카 수도인 킹스턴 공항에 내리고 바로 마라화나 냄새를 맡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마라화나가 온 도시를 휘감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마리화나는 미국 말보로 담뱃값보다 더 싸고 온 도시 어디에서도 쉽게 구할 수 있다고 한다 토요일이면 어느 정치인이 온 도시에 마이크에 대고 시끄럽게 떠들어 된다, 스피커에서 들리는 소리에 시끄러워 늦잠을 자지도 못했다, 이상한 나라다, 라면을 사러 마켓을 갔을 때 철망으로 이중 삼중으로 막혀있어 편하게 라면도 사지 못했다, 내가 가본 나라 중 가장 위험했고 지금까지 여행객들에게 이곳 킹스턴 만큼은 여행을 가지 말라고 권하는 그런 나라다, 레게 음악의 나라이며 마리화나의 나라 자메이카에서 생긴 이야기다, 레게 음악을 배우기 위해 다른 나라에서도 젊은이들이 자주 온다고는..

벨리즈의 마야 유적지 알툰 하(altun ha)

벨리즈 시내를 벗어나 열대우림 속으로 약 1시간 30분을 지나가면(약 50㎞) 또 다른 오래된 문명을 만날 수 있다, 바로 알툰 하(altun ha)라는 이름의 마야인들이 살았던 유적지다, 약 천 년 전 이곳의 문화는 최고의 전성기를 맞이했으며 이곳을 중심으로 거주했던 마야인의 인구는 약 이만오천 명이나 되었다, 이곳은 13개의 신전과 2개의 중앙 광장이 있는 마야인들이 건설한 유적지이다, 1961년도에 발굴되었으며 벨리즈시티에서 약 50㎞ 떨어져 있다 이곳은 마야인들이 신께 제사를 올리던 신전이었다, 샌 페드로 섬을 나와 벨리즈시티에서 하루 묶기로 했다, 벨리즈 시티는 유난히 검은 피부를 가진 사람들이 많이 많았다, 흑인들의 다른 나라를 여행해 봤지만 그들의 몸에 폼이 나는 옷을 입혀놓으면 나름 그들만..

트리니다드 토바고의 공항에서 붙잡혔을 때의 이야기

(트리니다드 토바고섬에서 아래를 볼 수 있는 언덕이 딱 한군데 있다, ) (흑인들의 나라였고 영국의 지배를 받았던 나라 그래서 이 나라는 영어를 쓰고 있다,) 트리니다드 토바고의 공항에 도착했다, 쿠바를 거치고 그랜드 카이맨, 자메이카를 거쳐서 이젠 흑인들의 나라 트리니다드 토바고에 도착했다 이곳을 도착한 시간을 오후 7시였다, 정확한 시간에 도착을 했고, 난 새로운 나라에서 어떤 것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어떤 볼거리들이 있을까? 많은 희망과 호기심에 배낭을 짊어지고 즐겁고 가벼운 마음으로 공항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어제 급하게 정해 놓았지만 잠을 잘수 있는 호텔이 있었고 시간도 오후 느지막이니 호텔 근처에서 저녁만 먹고 바로 호텔로 들어가면 되었다 여행이 즐거울때는 공항을 빠져 나갈때도 발 걸음..

파라과이 여행 첫날에 길을 잃어 버라고 헤매고 말았다

(이과수 폭포)파라과이 여행때 찰영했다 파라과이 아순시온 공항에 도착했을 때 뭔지 모르는 꽃 냄세가 확악~ 들어왔다, 처음엔 아카시아 냄새 같았지만 나중에 그 냄새가 아닌것을 알았다, 이 나라에 살고 있는 사람을 만날때마다 이 냄세에 대해 물어보곤 했지만 다들 자기들은 전혀 이 냄세를 모르며 살고 있다고 한다, 이 나라의 고유 냄세라고 지금도 생각하고 있다, 아순시온을 떠날 때까지 이 찝찝한 향 내음을 맞으면서 지내야 했다, 이곳엔 이민 가서 사는 친구가 있었다, 2014년 12월 어느날 이야기다 친구는 고생 끝에 어느덧 자리를 잡고 살고 있었는데 그가 살고 있던 마을 이름은 람바래(Rambare)라는 곳이다, 수도 아순시온 근교의 작은 도시였고 그곳에서 작은 마켓을 하고 있었다, 친구는 마켓 일 때문에..